여행/2507 유럽 7개국

#24. 이탈리아(7) - 폼페이, 포지타노

2025. 8. 23.

따로 남부투어를 신청해 새벽같이 떠났다. 사실 나폴리를 비롯한 남부를 로마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온다는 발상 자체가 일반적이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한국인들은 자주 떠나는 코스다. 아무튼 버스를 타고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폼페이. 애초에 폼페이를 가보고 싶어서 신청한 투어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현대의 폼페이가 아닌 과거의 폼페이에 해당하는, Scavi di Pompei이다. 폼페이는 과거에 나름대로의 규모를 가진 도시였으나 주변의 베수비오 화산의 화산쇄설류에 의해 멸망한 곳이다. 다만 화산재를 걷어내고 복원한 것이어서 의외로 화산에 의해 멸망했다는 것을 느낄 수는 없었고, 포로 로마노와 같이 그냥 평범하게 쇠락한 도시의 유적처럼 느껴졌다. 나가사키의 운젠과는 또 다른 느낌.

 

남아있는 기둥들

유적지에 들어가면 극장 사면주랑(Quadriportico dei Teatri)을 바로 볼 수 있다. 이곳은 처음에는 극장의 배우들과 관객들이 머물던 광장과 같은 곳이었으나, 이후에 검투사들의 막사와 같은 곳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실제로 벽을 보면 당대 사람들의 평균 키에 맞게 굉장히 낮은 층고의 방들이 많이 있다. 

 

대극장의 윗부분

바로 옆에는 대극장(Teatro Grande)이 있다. 폼페이가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니었으나 그에 비해 극장은 꽤 거대한 편으로, 귀족이 앉는 대리석 좌석과 뒤쪽의 일반 좌석으로 구분되어 있다. 과거에는 위에 천막이 쳐져서 사실상의 돔 극장과 같았다고 하는데, 이때 좌석의 각도가 중앙에서 발생하는 음향이 증폭되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중앙에서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유적의 흔한 거리

유적 자체가 굉장히 큰 편인데 그늘은 막상 거의 없어서 걷기 쉽지는 않았다. 거리를 보면 잘 정비된 직선의 돌길 양 옆으로 창고나 집이 쭉 들어서 있는 형태인데, 마차와 노예가 걷는 중앙 도로와 일반 시민이 걷는 인도로 구분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신분을 제외하면 현대식 도로와 크게 차이가 없고, 쭉 뻗어있어서 그런지 나름대로 최신 같다.

 

매음굴의 내부

또 유명한 곳으로 매음굴(Lupanare)이 있는데, 내부를 보면 침대가 있는 작은 방이 빽빽히 있는 구조다. 벽에는 성관계 체위가 자세하게 그려져 있어 당시 말이 통하지 않는 뱃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떻게든 장사를 하려고 했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근데 아무리 가죽이나 양털을 돌 위에 깔았다고 해도 침대가 굉장히 불편해 보인다. 평균 신장이 신장인만큼 엄청 작기도 하다.

 

매음굴의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석(?)

도시 곳곳에서 이곳의 방향을 알려주는 묘한 모양의 표지석을 볼 수 있는데, 그만큼 당대 사람들이 향락을 과하게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발굴을 하며 현대인들 사이에서 폼페이의 평판이 그렇게 좋지 않아졌다고 한다. 아무래도 길 한복판에 뜬금없이 이딴게 새겨져 있으니 그럴 만도 할 것 같다.

 

포로 디 폼페이와 베수비오 화산

그리고 유적의 중앙에는 포로 디 폼페이(Foro di Pompei)가 있다. 상당히 규모가 있는 광장으로, 내부에는 유피테르 신전과 시장 같은 것들이 들어서 있다. 여기서 폼페이가 계획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항공뷰로 보면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물고기와 같이 생겼고 동남쪽에 있는 원형 경기장이 물고기의 눈에 해당한다는 것. 

 

수산시장(이었던 것)
사람의 석고상

그리고 꽤나 다양한 곳에서 석고상을 볼 수 있다. 폼페이하면 떠오르는 그거다. 화산재가 쌓이고 그 사이에 파묻힌 사람이 썩으면 생기는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굳힌 사람의 형상으로, 그렇다보니 안에 미라가 있지는 않다. 그래도 당대 사람들의 옷차림을 볼 수도 있고, 꽤나 자세가 생생한 편이기 때문에 화쇄류의 무서움을 느낄 수도 있다. 위의 석고상은 과거 수산시장이 있던 자리에 있는 것.

 

파스타(별로다)

이후 투어에 포함된 Ristorante Il Vesuvio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관광지 바로 옆의 식당답게 굉장히 별로였다. 아이슬란드 호스텔에서 만들어 먹었던 파스타와 비교가 될 정도면... 그건 매우 무난하게 맛있게 먹었지만 명색이 이탈리아의 식당인데 그거보다 맛이 없을 정도면 말 다했다. 그래도 같이 나오는 오징어 튀김과 피자는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 같다. 아무튼 돈 아까움.

 

소렌토 마을의 전경

이후 아말피 해안의 포지타노로 향했다. 해안 자체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거기에 있는 도로도 상당히 무서운 편이다. 그래도 그 도로에서의 풍경은 상당한 편으로, 확실히 도로 자체의 해발고도가 높다 보니 바다와 아래의 마을이 아주 잘 보인다. 가는 길에 소렌토 마을을 볼 수 있었는데, 요건 그냥저냥 평범하게 이뻤던 것 같다. 

 

포지타노 마을 도착 전에 도로가 좀 좁아지기 때문에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렌트를 하지 않으면 오기가 쉽지 않은 곳인 듯.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남부투어는 소렌토에서 멈추고 포지타노는 그렇게 많이 가지는 않는 것 같다.

 

포지타노 마을의 전경

그렇게 도착한 포지타노 마을! 굉장히 더웠지만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와 해변, 절벽에 지어진 아기자기한 집들까지 이른바 완성형 풍경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물론 아이슬란드와 같은 자연의 풍경이 아닌, 마을의 풍경이라는 뜻). 마을을 제대로 조망하려면 도로를 따라 Positano (Sponda) 버스정류장까지 좀 걸어가야 한다.

 

아페롤 스프리츠(얼음)

정류장 근처에 있는 Angelo Cafe에서 아페롤 스프리츠 슬러쉬를 먹었는데, 날씨가 하도 더워서 더 맛있게 느껴졌다. 물론 접근성이 좋지 않은 관광지답게 물가가 비싼 편이긴 하지만 이런 한여름에는 절대 돈이 아깝지 않다. 일단 살아야 하기 때문. 아무튼 좋은 풍경과 함께 적당히 맛있고 시원한 음료를 먹으니 나름대로 힘이 나는 느낌이었다.

 

포지타노의 거리에서

절벽에 지어진 소도시답게 거리도 엄청 좁았지만, 그만큼 꾸며져 있는 밀도(?)가 상당해서 걸어 다니면서 구경하는 재미가 확실히 있기는 했다. 좁아서 그늘도 나름대로 잘 되어있어 엄청나게 덥지는 않았던 것도 장점. 애초에 이런 해안 소도시에서는 거리 구경하는 게 가장 재밌기는 하다. 그건 어느 나라에서나 그런 듯.

 

스피아자 그란데 해변에서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포지타노에서 가장 눈에 띄는 큰 해변인 스피아자 그란데 해변(Spiaggia Grande)에 도착한다. 사실 해변이 막 크지는 않기는 한데, 일단 이 지역에서 가장 큰 것은 맞다. 그렇다 보니 사람이 정말 엄청나게 많은 편. 개인적으로 사람이 너무 많은 해변을 좋아하지 않기에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워낙 물 색도 이쁘고 여름이기도 하다 보니 바다 보는 재미는 확실하게 있다. 이와 별개로 유럽은 확실히 유럽인게, 해변에서 사람들이 훨씬 자유로운 듯.

 

다만 아무리 그래도 더워도 너무 더워서 쪄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집합 장소인 Elisir di Positano라는 카페에서 적당히 생과일주스를 마시다가 포지타노를 떠나 다시 로마로. 돌아오니 저녁 6시쯤이었다. 

 

냉면!

뭔가 저녁으로 한식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한식집을 돌아다녔는데, 전부 만석이라 떠돌다가 도달한 곳이 스타밥스(StarBaps)이다.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일회용 그릇에 나오는 만큼 엄청 맛있지는 않지만 객관적으로 적당히 먹을만한 정도의 한식을 제공하는 곳이다. 날씨가 날씨이기에 냉면을 먹었는데 살 것 같았다. 평소 평양냉면만 먹지 고깃집 냉면 같은 새콤달콤한 냉면은 좋아하지 않지만 오랜만에 먹는 한식+날씨 크리를 맞아 맛있었다.

 

Fear & Loathing in Oaxaca / Yugen

밥을 먹고 밀라노의 Moebius처럼 월드 베스트 바에 포함된 바 Drink Kong에 가보았다. 전체적으로 아방가르드하고 실험적인 칵테일을 추구하는 것 같았으나 이곳 역시 일본처럼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려는 바텐더가 있지는 않았다. 확실히 혼술 자체가 매우 적어서 그런 듯. 이곳에서는 다음의 두 잔을 마셨다.

 

Fear & Loathing in Oaxaca

데킬라, 메즈칼, 재증류한 미도리와 남은 미도리, Kong 코디얼, 할라피뇨, 패션후르츠.

 

유겐 (Yugen) 

히비키, 파프리카, 미림, 파파야, 백콩, 피노 쉐리

 

후자는 솔직히 평범했는데, 전자가 매우 특이했다. 일단 미도리를 재증류하여 얻어진 것과 남은 것을 따로 사용하는 것이 상당히 신기하다. 그만큼 미도리 자체의 향과 당을 따로 컨트롤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메즈칼과 할라피뇨라는, 어떻게 보면 검증된 것 같으면서도 이국적이고 스파이시한 조합이 아주 맛있었다. 확실히 재료의 조합도 조합이고 재료의 컨트롤 실력이 상당한 것 같다. 

 

이렇게 로마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