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티칸을 둘러보기에 앞서 로마의 4대 성당 중 하나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부터 가보았다. 테르미니역 바로 근처에 있어 접근성이 상당히 좋기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내부는 역시 4대 성당답게 상당히 크며, 아기 예수의 구유 유물함(Sacra Culla)와 같은 것도 있다. 올해는 희년이기에 희년에만 열리는 성문을 통해 입장했다.

다만 4대 성당이기에 방문했다기보다는 올해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묘가 있다고 하기에 온 것이다. 그의 유언대로 굉장히 간소한 무덤인데, 따로 화려한 장식 없이 작은 십자가 밑에 FRANCISCVS라는 이름만이 새겨져 있을 뿐이다. 오히려 그래서 그런지 상당히 성스러워 보이는 모습. 대리석과 적절한 조명의 조합이 아름답다.

투어가 시작되기까지 시간이 살짝 남아 바티칸 시국으로 미리 갔다. 이날은 수요일이었기에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리는데, 이 때문인지 미사가 끝난 후에 갔음에도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그래도 광장 자체가 상당히 거대한 편이기에 적당히 돌아다니기는 나쁘지 않았긴 한데 햇빛이 너무 강해서 최대한 그늘로 돌아다녔다. 바티칸에 들어갈 때는 간단한 짐검사만 거치면 됐다.


광장 앞쪽, 즉 성 베드로 성당 바로 앞에는 교황의 자리가 있었고 이때는 교황 레오 14세의 알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적당히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애초에 광장에 거대한 모니터가 많이 설치되어 있어 이를 통해서도 볼 수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의외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는 사람치고 그 경호가 많이 삼엄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때 뭔가 사람들이 줄을 막 서길래 따라 서봤는데, 그렇게 10분 정도 떠밀려가다가 정신 차려보니 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였다. 분명 엄청난 대기줄이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 심지어 입장도 성문을 통해서 한 것도 신기할 따름. 어차피 투어 마지막에 둘러볼 예정이기 때문에 그냥 분위기 정도만 보고 나왔는데, 막상 성당을 나오니 광장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들어보니 12시부터 입장을 막았다고 하는데 덕분에 사람 없는 텅 빈 광장을 볼 수 있었다.

점심은 바티칸 근처의 Scialla The Original Street Food에서 라자냐를 먹었는데, 일단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무난하게 괜찮았다. 아무래도 바티칸 역시 상당한 관광지기에 그 근처의 식당에서 뭔 대단한 맛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 정도면 나름대로 괜찮게 먹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애초에 사람도 없어서 후딱 먹고 가기 좋은 듯.


그렇게 투어 시작. 패스트트랙 입장이 포함된 투어이기에 바티칸 박물관을 대기 없이 바로 입장했다. 바티칸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상당한 수의 작품이 있는 거대한 박물과 미술관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시스티나 경당까지 포함시킨다면 더하다. 입구부터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에게 헌정된 조각이 있다.

박물관의 초입에 있는 피나코테카(Pinacoteca). 회화 작품을 모아놓은 곳인데, 그 안의 한 방에는 라파엘로의 그림 3점이 크게 걸려있고, 중앙에는 유명한 성모 발현이 있다. 성경에 묘사된 두 사건을 한 작품에 그린 라파엘로 최후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채색 스타일은 그렇게 좋아하는 느낌은 아니긴 하지만, 그림의 전체적인 구도가 굉장히 좋다고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크다.

밖으로 나오면 솔방울 정원(Cortile della Pigna)이라는 곳이 있는데, 실제로 솔방울 모양의 장식물이 있긴 하나 별로 인상 깊지는 않았고, 그것보단 Arnaldo Pomodoro의 Sfera con Sfera라는 작품이다. 현대 미술 작품으로 직경이 4m에 달하는 굉장히 거대한 구인데, 아주 천천히 미끄러지며 돌아가는 게 꽤 묘하게 멋있다. 가이드가 이게 성 베드로 성당 상단의 구와 같은 크기라고 말했는데 찾아보니 아니다.

본격적인 박물관(피오-클레멘티노 박물관) 쪽으로 향하면 먼저 우피치 미술관에서도 봤던 라오콘 군상을 볼 수 있다. 물론 이게 원본이고 진품. 1506년에 발굴되었을 때 이렇게 한쪽 팔이 없는 상태였는데, 팔이 굽혀져 있을지 펴져 있을지에 대한 논쟁이 오고 가다가 펴진 상태로 복원되었으나 나중에 찾아보니 굽혀져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굉장히 유명한 조각.


역시 유명한 벨베데레 토르소(Belvedere Torso). 미켈란젤로가 극찬하고 이미 완벽하다며 복원하지 않았을 정도이다. 실제로 남성의 신체를 굉장히 좋은 비율과 함께 미적으로 조각한 것 같다. 토르소를 지나면 지도의 방(Galleria delle Carte Geografiche)이 나온다. 굉장히 긴 복도에 이탈리아를 그린 지도가 있고, 천장에는 그 지역과 관련된 그림이 그려져 있어 굉장히 화려하다. 물론 그만큼 사람도 엄청나게 많아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였다.


또한 라파엘로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우선 콘스탄티누스의 방에서는 그의 제자들이 완성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그림들을 볼 수 있다. 기독교가 로마에서 공인되는 일련의 사건을 그린 것으로, 십자가 앞에 그리스-로마의 조각이 부서져 있는 게 꽤나 임팩트 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아테네 학당을 볼 수 있었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수많은 유명인들이 모여있는 작품. 사실 벽화인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꽤 거대한 편이었다. 그리고 확실히 그 전체적인 구성이 매우 잘 되어있다고 느꼈는데, 사람이 굉장히 많이 그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굴 강조하고 싶었는지가 잘 드러나며, 무엇보다 어수선하지가 않다.

그렇게 박물관을 쭉 돌다 보면 이번에 콘클라베가 열린 시스티나 경당으로 자연스럽게 입장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유명한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을 볼 수 있다. 천장에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가 있는데, 여기에 보통 천지창조로 잘못 알려진 아담의 창조가 포함되어 있다. 사실 그림 하나하나는 평범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게 모여서 내는 웅장함이 상당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천장화보다는 경당 전면의 천지창조가 더 임팩트 있었는데, 예수를 바탕으로 엄청난 수의 천사와 인간을 묘사한 작품으로 구도도 엄청 잘 잡혀있고 역동적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원칙적으로 사진 촬영도 불가하고 대화도 금지지만 역시나 서양인들답게 무시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이렇게 박물관과 경당의 관람을 끝내고 나와 성 베드로 성당에 들어갔다. 아까보다 사람이 조금 늘어난 느낌이었다.


그렇게 인파를 뚫고 들어간 성 베드로 성당의 천장에서는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무신론자 입장에서도 매우 경건한 느낌을 받았다. 성 베드로 성당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 중 하나로 바티칸을 넘어 기독교 자체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라고 할 만하다. 정말 다른 성당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규모로, 성당 초입에 섰을 때 내부가 전부 눈에 들어오지 않아 그 구조를 짐작하기가 상당히 힘든 편이다.
Tu es Petrus, et super hanc petram aedificabo ecclesiam meam. Et tibi dabo claves regni caelorum.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마 16:18-19, 공동번역 개정)
성당 내부의 햇빛이 들어오는 곳은 밖에서 보았던 돔인데, 일단은 올라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들었으나 당연하게도 계단을 이용해 엄청 걸어야 한다고 해서 포기했다. 돔의 안쪽 벽면에서 위와 같은 거대한 글귀를 발견할 수 있다. 매우 유명한 구절이다.

또한, 내부에는 미켈란젤로의 역작인 피에타가 있다. 단순히 피에타라고 하면 수많은 피에타를 다룬 작품 중 이 작품이 먼저 나올 정도로 매우 유명하다. 전체적인 조형미도 조형미지만, 성모 마리아의 옷의 주름 표현이 굉장하다. 어떻게 대리석을 깎아서 이 정도로 정교한 결과물을 낼 수 있었는지 가늠이 안된다.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순간.

성당 제일 끝, 즉 교황이 앉는 곳에는 베드로의 성좌(Cathedra Petri)가 있다. 비둘기가 있는 중앙 부분으로 햇빛이 들어와 밝게 빛나는 게 은근히 이쁘다. 확실히 교황의 권위를 표현한 느낌.

그 외에 성당을 장식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조각과 그림이 수없이 많았다.

그 와중 오후 5시의 미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았는데, 당연하게 라틴어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어 그냥 분위기만 봤다. 합창단?이 찬송가 부르는 걸 들었는데 성당 전체에 조용하게 울려 퍼지는 게 인상적이었다. 다만 애초에 미사가 맞는지도 모름. 그렇게 규모가 크지 않았고 사람도 엄청 많지는 않았으니 그렇게 중요한 행사는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저분들 직책도 모르겠다.

성당을 비롯한 바티칸의 경비와 치안은 스위스 근위대가 담당하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근무복을 입고 있는데 좀 묘하다.


이렇게 바티칸 관광을 겨우 끝냈다. 엄청 더웠던 것을 제외하면 작은 나라 안에 볼게 참 많았다. 종교가 없어도 나름대로 흥미롭게 보면서 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정도의 생각을 했다. 저녁은 Tonnarello라는 곳에서 먹었는데, 가이드에게 '로마 음식은 피렌체보다 별로인듯?'의 취지로 말하자 어이없어하며 추천받은 곳이다. 까르보나라를 먹었는데 상당히 꾸덕하면서 과하게 느끼하거나 하지 않아서 좋았다. 치즈의 풍미가 굉장히 좋았던 것 같다. 물론 굉장히 짰다는 것은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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