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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401 나고야, 기후, 시즈오카, 도쿄

2401 일본 | #3 - 시즈오카 (오이가와 본선)

by saika.stella 2024. 1. 23.

1월 22일

타카야마에서 출발하여 시즈오카까지. 꽤나 긴 거리다. 먼저 전날 탔던 특급 히다를 다시 탔다. 그래서 별거 없.

 

앞서 출발한 노조미. N700S다

이번 여행에서 교통비만은 아끼지 말자고 결심했기에 나고야 역에서 신칸센으로 환승. 히카리 502호고, 사전에 조사했다시피 평범한 N700A가 왔다. 특급 히다가 10시 34분 도착이고 히카리가 10시 43분 출발이라 9분밖에 환승 시간이 없었는데, 어차피 1분 30초 만에 환승했다는 사람이 있어서 느긋하게 갔다. 실제로 여유롭게 걸어서 가도 근처 플랫폼이라 5분 이하로 충분히 환승 가능. 그리고 어쩌다 보니 신칸센 안에서 JLPT N1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 잔 해~

여담으로 이번 여행때 처음으로 ambitious japan이 아닌 会いに行こう를 들을 수 있었다.

 

천연 미나미 마구로동 / 웨이팅

시즈오카에 도착하고 바로 밥을 먹으러 갔다. 카이센동을 파는 시미즈코 미나미 (清水港みなみ, 타베로그 3.77) 인데 갔을 때 웨이팅이 좀 있어서 15분 정도 기다리고 먹었다. 점포의 대표 메뉴라는 천연 미나미 마구로동을 시켰는데, 오오토로, 츄토로, 아카미, 아카미 구이, 스키미 - 이렇게 들어가 있는 마구로동이었다. 근데 진짜 참치가 엄청났다. 진짜 부드럽고 풍미가 대단했다. 역시 산지 직송이 최고다. 점포에서 가장 비싼 메뉴이기도 했고. 웨이팅 행렬을 보면 다 주변 직장인들인데, 자주 올 만도 하다. 다만 개인적으로 동(丼) 자체가 이해가 좀 안 가는 게 왜 밥이랑 같이 주는 거지..

 

걸으면서 본 풍경

시즈오카 역에서 카나야 역까지 도카이도 본선을 타고 간 후, 걸어서 신카나역까지 갔다. 별 볼일 없는 신카나야 역에 간 것은 바로 증기기관차를 타기 위해. 딱히 대놓고 관광 열차도 아닌데 (타는 사람은 거의 관광객이 대부분이지만 아무튼) 거의 매일 운행하는 편성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일단 명목상 임시 급행 편성이긴 하다. 카나야 역에서 신카나 역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시골 작은 마을의 풍경. 사실 카나야역에서 신카나역까지도 오이가와 본선을 타는게 일반적이지만 시간도 넉넉하고 걷고도 싶었다.

 

SL 탑승권의 경우 미리 오이가와 철도 홈페이지에서 예약한 후 신카나야 역 옆에서 발권했다. 특급권 + 운임까지 해서 총 1690엔으로 그냥 특급이라 생각하면 아주 비싸다. 그래도 뭐 거의 없는 증기기관차로 운행하는 관광열차가 아닌 특급 열차라 생각하면 그렇게 비싸지 않을지도? 그냥 관광 비용이라고 치기로 했다.

 

온 세상이

카나야역에 도착. 그런데 표를 수령하는 곳에 유루캠 등신대와 팝업스토어가 있었다. 그건 바로 유루캠 10권(애니 3기)에 오이가와 부근이 나왔기 때문. 물론 대부분은 이에야마 윗쪽 센즈역 부근이긴 하지만. 사실 원래 계획은 SL을 타고 이후에 이카와선으로 환승하여 쭉 가는 것이었으나 현재 이카와선 초반 구간이 운휴 중이라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이에야마 역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가서 이카와선을 타기에는 시간이 꽤 걸리기도 하고 배차간격도 절망적이어서 돌아오는 방법이 없었다. 겨울에 가게 될 듯?

 

철덕이 된 나데시코

나데시코 : 보통열차는 레트로한 느낌이고 증기기관차랑 디젤열차도 다니고 있다구. 철덕한테는 못참는 곳이라구? 오이가와는!!

린 : 닌 언제부터 철덕 된거냐?

 

아무튼 그래서 그곳에서 팔고 있던 유루캠×오이가와 철도 기념 티켓을 구매했다. 무쇠 팬도 있고 클리어 파일도 있고 나름 종류는 다양했는데, 일단 철도 회사랑 콜라보하는거니 아무래도 철도 굿즈를 사는게 좋을거라 생각했다. 한편 옆에 유루캠 성지순례 지도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보통 이런 곳엔 분명 유루캠 성지순례하러 온 사람이 좀 있기 마련인데 놀랍게도 나 뿐(?)이었다. 아무래도 애니가 아니라 원작과의 콜라보라 그런듯? 조만간 애니 3기가 방영하면 관광객이 좀 늘 것 같다.

 

오이가와선 카나야역

지금보면 카나야역도 유루캠에 등장했다. 오쿠시즈 킷뿌(奥静きっぷ)가 4900엔이라는데 다음에 이카와선 타게 되면 사야지.

 

신카나역에는 증기기관차의 회전 플랫폼이 있다. C12형이 동태보존된 채 플랫폼 위에 올라가 있었다. C12형은 쇼와 12년(1937년) 생산된 증기기관차이다. 확실히 정말 우수하게 보존된 편. 물론 그렇긴 하지만 실제로 타게 될 것보다는 임팩트가 적긴 했다. 애초에 가까이 다가가기도 애매하기도 했고.

 

수험 합격을 응원하는 C10형 8호기
반짝반짝하다

오늘의 주인공은 오이가와 본선 급행 SL 카와네지 13호. 운행되는 기관차는 C10형 8호기이다. 이는 현존하는 유일한(!) C10형 기관차. 정말 역사적인 차량이다. 무려 쇼와 5년(1930년) 에 생산된 녀석으로, 이게 아직까지 멀쩡히 운행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무슨 관광 열차의 이름이 붙은 거도 아니고 멀쩡히 "급행"이라는 이름으로 운행한다는 게 참 웃기다. "오늘 탄 급행열차가 만들어진 지 90년 넘은 열차야"라니 누가 믿을지. 플랫폼에서 증기와 석탄 연기를 내뿜으며 정차해있는 모습은 마치 내가 일제강점기에 있는건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열차 선두에 '힘내라 수험생'이 붙어있는건 오이가와 본선에 합격(合格)역이 있기 때문. 원래 五和였는데 바꿨다고 한다.

 

객차의 내부 전경
오하35 559

탑승한 객차는 오하35 559. 쇼와 17년 (1942년) 에 제조된 객차다. 말도 안되게 오래된 기관차보단 젊지만, 아무튼 여전히 늙은 건 마찬가지. 타면서부터 진짜 낡은 객차라는 게 뼈저리게 느껴졌다. 벽면, 좌석, 천장에 달린 선풍기, 창문을 여는 방법까지 어느 하나 예전 객차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이 없다. 진짜 자리에 앉자마자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이리저리 둘러보게 된다. 시간 감각을 이상하게 만드는 객차.

 

익숙한 모습!

그리고 오하35계는 은하철도 999에 등장하는 999호의 객차(의 모티브로 여겨지는 객차 중 하나)이다. 모티브는 오하61계, 오하35계, 스하43계 등이 있다. 매 화마다 작화가 들쑥날쑥해서 하나로 좁혀지질 않기에 그냥 3개 전부 모티브라 보는게 맞다. 아무튼 999에서 보았던 모습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999호의 모티브인 C62형 기관차 자체가 내가 탄 C10형 기관차보다 한참 최신형이기도 하다.

 

달리는데 석탄 냄새가 스멀스멀 들어오기도 하고, 낡은 열차답게 뭔가 다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엄청 삐걱삐걱이면서 흔들렸다. 좌석은 생각보다 편하진 않아서 도대체 테츠로와 메텔이 어떻게 이런 의자로 여행을 했는지 의문. 30분만 앉아도 엉덩이가 아프다. 그리고 경적 소리가 생각보다 아주아주 컸다. 갑자기 달리다가 가끔씩 경적이 급발진하는데 그럴때마다 예외 없이 놀랐다. 창가에 기대면 숯검댕이 손을 더럽힌다.

 

스하후43 2

탔던 객차인 2호차 앞에 달린 다른 객차에는 오이가와 철도의 임원들로 추측되는 사람들이 거의 20명은 족히 타서 다른 직원 몇 명에게 설명을 듣고 있었다. 처음에 열차에 탑승할 때부터 방송국에서 취지개 올 정도로 뭔가 이벤트가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인터뷰 당하고 싶었는데 앞에 있던 어린 아이가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묻혔다. 아무튼 요건 스하43계. 후(フ)가 붙어있으니 차장실이 있다는 뜻일까. 철덕 아니라 모름! 아무튼 키하, 모하도 아니고 스하후는 살면서 처음 본다. 물론 오하도 처음이지만.

잠깐 버벅였다가 다시 떠나는 기관차

이에야마 역에서 하차하였다. 그런데 기관차가 다시 발차하려다가 다시 멈춰 섰다. 기관사와 역무원의 당황하는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분명히 무슨 문제가 생겼음이 분명했고, 어떻게든 출발하긴 했는데 아무튼 뭔가 이상했다. 열차에서는 14시 42분에 내렸는데 59분에 다시 SL이 발차하기 때문에 그 모습을 찍기 위해 서둘러 이에야마교 아래로 갔다. 용케 어떻게든 좋아 보이는 구도를 잡아서 대기하고 있는데...

 

뭐여 이게.

위의 문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상한 편성으로 열차가 왔다. 대충 (거꾸로 연결된 SL) - (EL) - (객차)인데 뭔가 싶다. 일반적으로는 (EL) - (객차) - (SL) 정도의 편성이 맞을 것 같은데... 혹시 내가 모르는 뭔가 있을까 싶어 다양한 사진들을 찾아봤는데 이 편성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튼 구도는 진짜 마음에 드는데 SL의 모습을 제대로 담지 못한게 아쉽다. 갈대가 보케로 이쁘게 흐려지게끔 찍고 싶었는데... 다만 희귀(?)한걸 찍었으니.

 

도큐 7200계 전동차
열차 내부

대충 이에야마 역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왔다. 돌아오는 편은 쾌속급행 4001호. 도큐 7200계, 모하 7204이다. 이건 또 쇼와 48년(1968년) 제조된 차량이라 분명 장수만세긴 한데, 아무래도 아까 쇼와 초기 생산분 열차들을 잔뜩 보다 보니 이건 진짜 신차로 느껴졌다. 실제로 내부도 엄청 깨끗했고 시트도 쿠션감이 좋아서 쾌적했다. 그래도 원맨열차라는 점에서 시골의 열차라는 사실을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열차 외부의 연식은 숨길 수 없긴 했다. 차체가 반짝거린다고 해도 그 묘한 위화감이 있다.

 

히레카츠 정식

다시 시즈오카 역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으러 갔다. 스이엔도사이 (水塩土菜, 타베로그 3.76) 이라는 돈카츠집이다. 타베로그 평점이 꽤 괜찮아서 갔다. 가격이 상당했지만, 그만큼의 값어치를 했다. 주문하면 바로 고기를 망치로 치는 것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음식이 나오는 데에 시간이 꽤나 걸리지만, 정말 따끈따끈하고 신선했다. 고기가 내가 먹어본 어떤 히레보다 부드러웠고 질감이 완벽했다고 느꼈다. 겉의 튀김옷 역시 말도 안 되게 부드러운 내면과 대비되어 좋았다. 밥의 퀄리티, 미소시루의 깊은 맛, 소스의 밸런스까지 돈카츠와 완벽히 페어링 되어있다고 느꼈다. 인생 돈카츠집 등극.

 

스푸모니 / 레드 불릿 / 진토닉

시즈오카에서의 칵테일은 Bar Le Refuge (バー ル・ルフュージュ, 타베로그 3.22) 에서 맛보기로 했다. 구글 평점도 좋고 관광객 리뷰도 비교적 적은, 작은 느낌의 바라 괜찮다 싶었다. 실제로 바텐더의 인품이라거나 분위기도 모두 좋았고, 칵테일 퀄리티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옆에 앉은 여성 손님이 무슨 담배 4갑을 꺼내놓고 줄담배를 피워서 후딱 먹고 탈출.

프로즌 유자 / 스즈 김렛 / 라가불린 8년 미즈와리

이후 취향에 전혀 맞지 않았던 다른 바를 거쳐 Bar Gravity (グラヴィティ, 타베로그 3.21) 에 갔다. 무엇보다 전석 금연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고, 바텐더가 아주 친절했다. 프로즌 유자 칵테일은 유자 리큐르, 유자 시럽, 유자 주스라는 유자 3종세트를 쓰는데도 밸런스가 잘 맞는 게 아주 신기했다. 메인은 스즈 김렛인데, 스즈 자체를 베이스로 진을 안 넣는 건 처음 먹어 보았으나 놀랍게도 엄청 맛있었다. 라가불린 미즈와리는 적절히 피트피트해서 좋은. 근데 이렇게 3잔이 3000엔이 안 나왔다. 시즈오카에서 바를 간다면 여기를 강력 추천.

 

시즈오카에서 2박 3일간 지낸 곳은 산코 인 시즈오카 키타구치 (三交イン 静岡北口) 이다. 평범한 비즈니스 호텔이고 딱히 별건 없다. 앞서 나고야에서 지낸 산코 인과 큰 차이는 없는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