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
별무리 텔레패스 성지순례의 날! 우선 시미즈로 향했다. 시미즈 역에 내려 바로 Hello Cycling 앱을 이용해 자전거를 빌린 후 미호로 출발. 우리나라의 따릉이보다는 비싸지만 일단 전기 자전거기도 하고 어차피 시원하게 달리고 싶어서 그냥 탔다. 대충 시미즈에서 미호노미사키 해변까지는 30분보다 적게 걸리는데, 바람이 많이 불뿐이지 자전거로 가기엔 아주 직관적이고 쉽다. 그냥 계속 왼쪽으로 꺾으면 되는 수준.
길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새 미호노미사키 해수욕장 (三保真崎海水浴場) 에 도착! 말이 해수욕장이고 이때는 그냥 주차장에서 찍었다. 주차장에 차를 가지고 온 사람들이 모여 있어 나만 자전거를 가지고 온 듯했다. 야마나시현 사람과 시즈오카현 사람들이 서로가 자기들이 보는 후지산이 더 멋지다고 난리를 치는 이유를 벌써 알 것 같다. 야마나시현에서는 드넓은 평지에 홀로 솟은 후지산이 매력적이라면, 여긴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 솟은 후지산이 대비를 이루어 멋지다. 그리고 봉우리 동쪽에 튀어나온 호에이산 (宝永山) 이 보이는데, 요게 은근 매력이 있다.
미호노미사키 해변부터는 태평양 해안 자전거 도로 (太平洋岸自転車道) 가 정비되어 있다. 중간에 미호노마츠바라 때문에 자전거에서 내려서 가야 하는 구간도 있지만, 그 외에는 아스팔트가 잘 깔려 있어 자전거로 달리기 쉽다. 다만 바닷바람이 상당히 세기도 했고, 특히 이날 강풍 주의보까지 발령되었다는 문제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기온 자체가 워낙 높아서 바람을 즐기며 탈 수 있었다.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다.
자전거를 타고 태평양 해안 자전거도로를 달리다 보면 자연스레 시미즈 등대 (清水灯台) 가 나온다. 일본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등대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등대이다. 물론 가서 보면 그냥 등대가 있네 싶고 별로 특별한 걸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등대는 유우의 집?이자 하루노와 로켓연 모두의 아지트로 등장하는 등대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작중에서 여러 인간관계가 얽히는 장소로 나오는 만큼 멀리서부터 등대가 보였을 때 아주 감회가 새로웠고 기분이 좋았다.
계속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바다가 더 넓게 펼쳐지고 검은 모래로 이루어진 해안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미호노마츠바라 앞 해안가 (鎌ヶ崎) 인데, 여기는 바로 로켓연이 마타타키를 영입하려고 로켓을 발사한 장소이다. 미호노마츠바라는 나름 중요한 장소이기도 해서 보호되는 숲인데 여기서 그냥 날리다니 신기하다. 마타타키의 로켓이 이상하게 날아가서 마츠바라쪽으로 갔으면 산불이 났을 가능성도 없지 않을텐데. 아무튼 정말 인생 최고의 후지산 뷰다. 그냥 계속 앉아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풍경이다.
다시 도로를 따라 달리면 미호노마츠바라 (三保松原) 에 들어가게 된다. 다이쇼 11년에 일본 최초의 명승지로 지정될 만큼 그 풍경이 뛰어난 곳이고 실제로 가보면 수많은 소나무 사이에서 뭔가 자연의 기운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요런 것보다 여기에 온 이유는 바로 여기에 로켓연이 외계인으로부터 받은 좌표가 존재하기 때문. 실제로 작중에 등장하는 좌표에 가보았다. 당연히 아무것도 없지만 아무튼간에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맞추어 그 장소에 서보니 감개무량하였다.
새삼 이걸 해독한 마타타키가 대단하다고 느껴지네...
그리고 이곳은 유우의 '나쁜 우주인' 발현 장소이기도.
미호노마츠바라 앞 해안가에서는 후지산도 잘 보이고 뻥 뚫린 군청색 바다도 눈앞에 펼쳐진다. 이 둘의 대비가 상당한데, 솔직히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야마나시현에서 본 후지산 정도는 압살 하는 수준. (나중에 야마나시랑 시즈오카랑 이걸로 싸운다고 들었다) 아무튼 검은 해안가, 짙은 푸른색의 바다, 선명한 후지산, 은은하게 자란 소나무까지 정말 "일본" 그 자체였다. 진짜 글로 쓰기가 정말 어려운 풍경으로, 시즈오카에 왔으면 여기에 반드시 꼭 방문할 것을 매우 강력히 추천한다. 일본에서 원탑 풍경. 이런 풍경을 매일 보고 있는 미호 주민들이 상당히 부럽다. 실제로 딱봐도 집 앞 산책 나온 사람들이 좀 있었다.
진짜 날씨가 미쳤다. 투명도도 완벽하고 너무 좋은.
다시 시즈오카역까지 돌아와 라멘을 먹었다. 이다텐 시즈오카점 (伊駄天 静岡店, 타베로그 3.64) 으로 시즈오카 시 밖에 본점이 있는 체인점이긴 하나 막상 이곳의 타베로그 평점이 좋은 곳이다. 쇼유라멘을 먹었는데 무료로 오오모리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맛은 전형적인 쇼유 라멘이긴 한데 일본치고 상당히 짜지 않은 것이 특징이었다. 리뷰를 보니 과거와 현재의 맛 차이가 꽤나 있는 것 같은데, 확실히 담백한 쇼유 라멘은 의외여서 꽤나 괜찮았다.
시즈오카 역에서부터 노선 버스를 타고 니혼다이라 (日本平) 에 방문했다. 니혼다이라는 막상 가보면 높은 산 위에 있는 평범한 전망대 느낌이다. 그런데 전망이 심상치가 않은 게, 후지산, 미나미 알프스, 이즈 반도, 스루가만, 후지산이 전부 훤히 보인다. 아무래도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보니 뷰가 아주 좋다. 다만 전망대랑 같이 딸린 카페 말고는 할 게 없다. 로프웨이를 타고 내려갈 수는 있는데 다시 올라와서 돌아가는 게 좀 그럴 것 같았다.
전망대 안의 카페에서는 간단히 말차 라떼를 마셨다. 뷰가 뷰인지라 아주 맛있었다.
니혼다이라에서 타고 왔던 버스와 같은 노선의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져서 놀랐다. 그리고 중간에 일본에서 가장 긴 이름을 가진 버스 정류장 (曲金静岡視覚特別支援学校静鉄不動産静岡南店前 / まがりかねしずおかしかくとくべつしえんがっこうしずてつふどうさんしずおかみなみてんまえ - 마가리카네 시즈오카시카쿠토쿠베츠시엔각코오 시즈테츠후도오산 시즈오카미나미텐마에) 이 있었는데 애매해서 직접 보지는 못했다. 아쉽다.
아오바요코초 (青葉横丁) 에 위치한 세이라 (聖羅) 라는 곳에서 오뎅을 먹게 되었다. 왠지 모르게 리뷰에 한국인들이 엄청 많은데 다들 호평이라, 이번만큼은 한국인 레이더를 믿고 가보았다. 쿠로한펜, 곤약, 무, 치쿠와 등의 오뎅을 먹었고, 토리모모와 난코츠도 먹었다. 오뎅은 확실히 오뎅으로 유명한 시즈오카답게 아주 부드럽고 탱탱했고 국물이 잘 베어서 맛있었다. 특히 곤약은 특유의 잡내가 없어 좋았고 무는 그냥 예상대로 아주 좋았다. 그러다보니 곤약이랑 무는 두번 먹었다. 술은 쇼세츠(正雪)라는 사케를 마셨다. 일반적인 사케보다 살짝 드라이하고 단 맛이 적은게 특징.
의외로 리뷰와 달리 한국인보다는 현지 단골 중심이었고, 가끔씩 단골들이 말을 걸어서 대화했는데 시작이 꽤나 웃겼다 :
(대충 주인장과 말하고 있는 나)
- 단골 : 못보던 얼굴인데 님 어디 지방 출신?
- 나 : 한국이요
- 단골 : 에? 도호쿠가 아니야?
그렇게 먹다보니 뜬금없이 옆에 한국인 분이 앉았다. 의외로 이날 미호 갔다 온 것과 다음날 도쿄로 가는 것까지 겹치는게 신기했다. 다만 좀 소심한 분이여서 별로 말을 하진 못했다. 아쉬울 따름. 간 곳도 겹치고 일본어 할 줄 알기도 해서 잘 맞을 줄 알았는디.
호텔 근처의 맥주집 BEER OWLE에서 무려 우츄 브루어리의 Cosmic Vision을 살 수 있었다. 요건 전에 카와구치코마치에서 마셨던 Cosmic Dream의 후속작 느낌인데, 실제로 맛도 Cosmic Dream에서 홉을 왕창 추가한 맛이었다. 인생 맥주다운 만족감이다. 우리나라에 수입된다면 참 좋을 텐데. 마시면서 계속 감탄하는 맛이다.
이 날 여러 의미로 우주의 기운을 잔뜩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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