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
새벽 5시쯤에 일어나 씻고 물건을 좀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토마코마이에 도착! 벌써부터 공장 비스무리한게 막 있는 게 확실히 공업지대라는 기분을 들게 한다.
그렇게 페리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토마코마이역으로 갔는데, 아주 어이가 없게도 한 서양인이 버스에서 요금을 못내서 몇 분 간 내리지 못해 열차를 놓쳤다. 왜 항상 지연을 만드는 건 서양인들인지 잘 모르겠다. 잔돈 안 나온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하나... 아무튼 머리를 굴려서 그냥 노보리베츠에서 온천도 하며 오래 있기로 했다. 따라서 다음 열차인 07:09 무로란행 무로란 본선 탑승.
노보리베츠역 도착. 벌써부터 유황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근데 의외로 역에는 외국인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곰이 두 마리 있었다. 대충 버스 시간까지 특급 호쿠토도 구경하며 시간 좀 때우다가 노보리베츠 온천행 버스를 탔다. 노보리베츠역 역사 내에서 왕복 티켓을 조금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으니 참고하길. 편도는 350엔인데 왕복은 640엔이다. 편도로만 갈 일은 절대 없을 테니 무조건 왕복 티켓을 사는 게 이득이다. 애초에 버스가 아니면 탈출 불가능.
그렇게 버스에서 하차. 조금만 위로 걸어 올라가면 된다. 다만 여기서부터 중국인 단체 관광객과 마주쳤고, 뭔가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소리 지르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도 있어서 상당히 어지러웠다. 제발 소음공해만은 하지 말아요.. 흑흑 어글리코리안
아무튼 노보리베츠 지고쿠다니(地獄谷) 도착! 히요리야마(日和山)의 화산활동으로 인한 온천지대라 곳곳에서 온천수가 나오고 김이 펄펄 나온다. 저 멀리에서 뿌연 온천수가 흘러오고 온 공기에 유황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다. 확실히 열기가 팍팍 느껴져서 엄청 습하고 더웠다. 그리고 지형부터가 꽤 특이한 편이라, 지옥이라기보단 약간 다른 행성이라는 느낌? 아무튼 신기한 곳이었다. 계곡 한가운데에는 작은 간헐천인 텟세이이케(鉄泉池)도 있었다.
지고쿠다니에서 오유누마로 가는 길은 꽤 험하다. 진흙이 많은 곳도 있고 경사가 급한 곳도 꽤 있어 가는 시간 자체는 별로 안걸리지만 생각보다 힘들다. 아무 생각없이 갔다간 땀을 뻘뻘 흘리게 될 것. 물론 그렇게 어려운 코스는 아니긴 하다.
오유누마로 가는 길에서 다양한 버섯들을 잔뜩 봤다. 생각보다 많이 있어서 놀랐다. 특히 빨간색 버섯들의 군락이 인상적이었는데, 이게 붉은사슴뿔버섯인지 붉은창싸리버섯인지 뭔지 구분이 잘 안 된다. 그다지 통통하지 않아서 전자는 묘하게 아닌 것 같기도?
오유누마(大湯沼)에 도착. 약 1km 정도 되는 큰 호수로 130도 정도 되는 온천수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확실히 여름인데도 물에서 김이 펄펄 나고 애초에 김이 솟아오르는 바위틈도 꽤 있었다. 다만 여긴 겨울에 오면 더 좋을 것 같다. 김이 좀 더 많이 나야 이쁠 듯?
옆에는 작은 연못에 가까운 오쿠노유(奥の湯)가 있다. 개인적으로 오쿠노유의 색이 더 민트색에 가까운 느낌이라 오유누마보다 이뻤던 것 같다. 작아서 그런지 뽀글뽀글 올라오는 물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오유누마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오유누마로부터 나온 온천수가 흐르는 계곡인 오유누마가와(大湯沼川)가 나오는데, 여기서 족욕을 할 수 있게 되어있다. 발을 담그니 확실히 뜨겁긴 했는데, 이게 일반적인 온천보다는 살짝 덜 뜨거운 느낌이라 딱 좋은 느낌이었다. 뽀얀 온천수 밑에는 검은 흙이 있다. 건드리면 (은근히 안 지워지는) 검은 자국이 남으니 걍 내버려두자.
마을로 돌아와 온천으로. 유모토 사기리유(夢元さぎり湯)라는 온천(을 빙자한 목욕탕)를 방문했다. 사실 다른 료칸에 딸린 노천탕도 있기는 했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좀 나가서 그냥 가장 저렴한 여기로 갔다. 실제로 현지인들은 여기를 꽤 방문하다는 후기를 보기도 했고. 다만 옵션장사를 상당히 하는데, 기본 목욕값에 더해 수건값, 칫솔, 샴푸, 바디워시 등등 모든 물품의 값이 따로 받는다. 일단 필수적인 목욕, 수건, 샴푸 정도는 800엔 정도에 해결할 수 있다.
내부는 딱 우리나라 대중목욕탕 느낌이다. 노천탕 같은 건 없고 지하에 있는 목욕탕이다. 다만 유황온천수가 나온다는 게 다른 점. 냄새부터가 심상치가 않다. 전에 아소산에 갔을 때와 앞서 지고쿠다니에서 맡았던 냄새가 그대로 난다. 또 일반적인 온천보다 뭔가 묘하게 더 미끌거리는 느낌이 난다. 다만 이게 냄새가 정말 그렇긴 해서 후딱 나와서 커피우유나 마셨다. 역시 온천 뒤에는 커피우유.
그런데 밖에 아무렇지도 않게 사슴이 있었다. 정말 홋카이도답다. 이게 하는 짓이 정말 상상하던 시카 그대로라 어이가 없었다.
노보리베츠역으로 돌아왔는데 묘하게 시간이 남길래 반대 방향 열차를 타 호로베츠역까지 가봤다. 별 이유는 없음. 이후 다시 치토세행 무로란 본선 열차에 탑승했다. 확실히 앞서 노보리베츠역에는 관광객이 꽤 늘었긴 한데, 아무래도 이들은 대부분 호쿠토를 타다 보니 보통열차에 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특히 앞칸에는 나만 있었다. 덕분에 아주 편안했다. 그렇게 치토세에서 쾌속 에어포트로 갈아타 삿포로 도착!
일단 배가 매우 고파서 밥을 먹으러 회전초밥 토리톤 키타8초 코우세이점 (回転寿し トリトン 北8条光星店) 으로 갔다. 그런데 뭔 대기가 2시간이라고 하길래 일단 대기에 이름을 올려놓고 호텔로 갔다. 대기를 걸어 놓으면 라인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 편리하다. 그런데 막상 호텔에 가니 사람이 팍팍 줄어서 들어온 지 15분도 안돼서 다시 나가게 되었다. 오히려 좋아...
사실 말이 회전초밥이지 그냥 태블릿으로 주문하면 가져다주는 시스템이다. 도대체 왜 회전레일이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아무튼 여기서 이번 여행에서 먹고 싶었던 스시에 대한 한을 풀었다. 대충 11 접시에 3500엔어치를 먹었는데 정말 배가 불렀다. 모든 재료가 아주 신선하고 맛있었는데, 특히 북방대합과 호다테가 매우 좋았다. 딱 바다의 맛이 느껴지면서 리프레쉬되는 느낌?
정말 가성비도 좋고 여러모로 좋은 식당인 것 같다. 물론 고급 스시집에 비할 건 아니지만 이렇게 싸고 많이 먹을 수 있는 게 이런 체인점 스시집의 매력이다. (그래서인지 점내에 한국인 관광객이 꽤 많았다.) 아 물론 대기 빼고.
이후 주변에서 리쿼샵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retrogade 진과 샤르트뢰즈 d'Elixr 1605를 구입했다. 특히 전자의 경우 스스키노역 근처에 있는 리쿼샵인 네모토 리쿼샵(根本酒店)에서 구매했는데, 직원이 엄청 친절하고 무료 시음까지 도와줘서 큰 고민 끝에 구매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진토닉을 타먹으니 정말 말도 안 되게 맛있었다. 시트러스가 이 정도로 앞으로 나오며 토닉과 잘 어울리는 진은 처음 봤다. 이 정도면 인생 진 등극. 추가로 네모토 리쿼샵에 우츄비루가 있었다. 이번엔 IPA.
역시 여행 마지막은 칵테일로 끝내야 한다. 주변에서 가장 유명한 듯한 바 ReCalm (타베로그 3.42) 로 갔다. 수상할 정도로 인퓨징에 진심인 바였는데, 특히 쿠민 진저에일과 블러디메리가 너무 맛있었다. 전자는 화이트럼에 쿠민을 인퓨징하고 진저에일을 풀업한 칵테일인데, 처음 한 모금 마시자마자 (좋은 쪽으로) 웃음이 나오는 맛이었다. 쿠민이 존재감이 엄청 강한데 놀라울 정도로 생강맛과 잘 어울리는 게 대단했다.
그러나 핵심은 스파이시 블러디메리였는데, 지금까지 먹어본 모든 종류의 블러디메리 및 그의 변형 중 가장 완벽했다. 토마토주스와 각종 소스가 너무 잘 어울렸다. 절대 과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심심하지도 않은, 정말 요리 같은 맛이어서 너무 좋았다. 나중에 이것만 먹기 위해 삿포로에 올 가치가 있을 정도.
처음엔 칭기즈칸을 먹으려 했으나 가격이 좀 거품 같기도 해서, 약간 해장 느낌으로 자정부터 아침 10시까지 영업하는 샤라라 (スープカレー専門店 シャララ, 타베로그 3.37) 에서 스프카레를 먹어봤다. 맵기는 中辛로 했다. 스프카레는 지금까지 먹어본 적이 없는데, 진짜 밥이 술술 들어가는 마성의 맛이었다. 적당히 얼큰하고 달달해서는 무슨 일반 카레는 절대 비비지 못할 수준의 맛. 괜히 삿포로가 스프카레로 유명한 게 아니다 싶었다.
9월 3일
귀국을 위해 쾌속 에어포트를 타고 신치토세 공항으로. 공항 구조가 좀 묘한 게, 국내선과 국제선 타는 곳이 엄청 멀리 떨어져 있어서 거의 15분 정도는 걸어야 했다. 무빙워크가 있긴 했지만 아무튼 멀긴 멀다.
아주 평범히 출국 수속. 아무 해프닝도 없이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이렇게 7박 8일간의 도쿄-도호쿠-홋카이도 여행이 끝났다. 홋카이도&동일본 패스의 효율은 18185/11330 = 160.5%가 나왔다. 원래는 200%를 넘길 수 있었는데 야마다선의 운휴나 갑작스러운 신칸센 탑승, 증류소 휴업 등등 각종 악재로 인해 효율이 떡락하게 되었다. 물론 패스인 만큼 100%만 넘어도 이득이기는 하지만, 보통열차만 타는 만큼 효율이 높아야 그만큼 이득이기도. 그 외에 페리 포함 일반 교통비는 1.6만 엔 정도가 나왔다. 확실히 신칸센과 페리가 합쳐서 거의 1만 엔 정도인 만큼 비중이 높다.
'여행 > 2408 일본 동북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08 일본 | #6 - 하치노헤, 실버 페리 (HHP 5일차) (0) | 2024.09.05 |
---|---|
2408 일본 | #5 - 모리오카, 아사비라키 증류소 (HHP 4일차) (0) | 2024.09.05 |
2408 일본 | #4 - 후타바마치, 센다이 (HHP 3일차) (0) | 2024.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