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하치노헤로 떠나는 날. 원래는 미야코에서 출발했겠지만 야마다선이 죽어서 바꾼 계획에 따르면 09:14 아오모리행 IGR 이와테 은하철도선 열차를 타야 했다. 그런데 참 어이가 없게도 14분을 24분으로 보는 바람에 1분 차이로 열차를 놓치고 말았다. 다음 열차는 거의 두 시간 뒤에야 있기에 그걸 탄다면 계획이 다 꼬이게 생겼다. 그래서 결단한 것이 바로 신칸센 타기.
09:48 신아오모리행 하야부사를 타기로 했다. 이후 니노헤에 10:12에 하차하여 10:22에 출발하는 앞서 놓쳤던 은하철도선을 타면 성공. 대충 신칸센으로 보통열차를 추월하는 느낌이다. 니노헤의 전역인 이와테누마미야나이역은 아슬아슬하게 추월이 불가능하여 추월이 가능한 가장 이른 역인 니노헤까지 표를 끊었다. 자그마치 3040엔. 패스 효율 떡락.
아무튼 신칸센이 왔다. 일단 아키타 신칸센과 같이 연결되어 와서 빨간색과 초록색의 두 열차가 붙어있는게 신기했다. 그나저나 E5계는 굉장히 유선형으로 이쁘게 설계된 열차다. 그리고 색은 아무리 봐도 미쿠가 맞다. 역시 하츠네 다운..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앞서 언급했듯 하야부사를 탔다는 점이다. 하야부사는 본래 돈이 더 내야 하지만, 센다이~모리오카 구간에서 정차역이 한 개 이상 있는 경우와 모리오카~신아오모리 구간에서는 추가요금을 받지 않는다. 덕분에 빠르고 편안하게 하야부사를 추가요금 없이 탈 수 있었다.
니노헤에 내려 무사히 은하철도선으로 환승했다. 원래 메토키역에서 아오이모리철도선으로 갈아타야 하지만 직통 열차라 아오이모리철도선 701계가 왔다. 또 701계라 실망한 것도 있고 은하철도선 열차가 아니라 실망한 것도 있다. 그나저나 니노헤역 역명판 종류가 여러 가지인 게 꽤 흥미로웠다. 나름 이쁜 듯?
그 와중 니노헤~키타이치온센 구간은 Porter Robinson의 Flicker 뮤비에 나온 구간이라고 한다.
아무튼 하치노헤 도착. 내려서 역에 짐을 맡기고 사메역까지 하치노헤선으로 이동했다.
사메역은 이름답게 역 앞에 뭔가 기괴한 상어 머리 동상(?)이 있다. 하카세의 사메와 이누가 생각나는...
버스를 타고 타네사시카이간역으로 이동! 드디어 기다리던 우니동을 먹을 시간. 역 앞에 위치한 핫코 쇼쿠도 (波光食堂, 타베로그 3.56) 에 갔는데 한 15분 정도 대기한 뒤 앉을 수 있었다. 메뉴는 특별 세트. 생 우니동과 미니 이소 라멘의 조합이다.
일단 우니동은 맛있긴 했다. 굉장히 사르르 녹으면서 담백한 푸딩 같은 식감이 재밌었고, 확실히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굳이 이걸 따뜻한 밥 위에 올려서 먹을 이유를 잘 모르겠다. 아무리 봐도 그냥 따로 먹는 게 더 맛있을 것 같다.
다음은 이소 라멘. 예상하지 못했는데 꽤 맛있었다. 대충 해조류, 어패류 등등을 넣은 산리쿠~하치노해 쪽의 향토 라멘이라는데 정말 시원하고 깔끔한 국물이 일품이었다. 비린내 전혀 없이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오히려 미니 우니동에 그냥 라멘을 시켰어도 나쁘지 않았을지도?
배부른 상태로 타네사시 해안으로 이동. 산리쿠 부흥 국립공원에 속한 해안가로, 바다 앞에 천연 잔디가 넓게 펼쳐져 있다. 일반적인 모래사장 같은 게 아니라 잔디인 게 꽤나 색다른 곳. 생각보다 면적이 엄청 커서 잔디밭에 들어서면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라 너무 좋았다. 시즈오카의 미호노마츠바라와 비빌 정도로 예쁜 해변이다. 수영복을 가져와서 헤엄치려고 시도하는 사람도 있긴 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해변이 아니라 돌이 많은 험한 해안이라 수영은 근처의 해수욕장에서.
까마귀가 꽤 많았다.
해안가에 마련된 트레일을 따라 걸으면 바닷바람과 시원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 그 와중 옆에 하치노헤선의 선로가 보였는데, 울타리와 같은 안전장치가 전혀 없어 이상하다 생각했다. 열차가 지나가면 꽤나 재밌을 듯.
뜬금없이 시라이와라는 큰 바위가 바다 위에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그러다 걷는 중간에 문뜩 무츠시라하마에서 출발하는 다음 열차에 늦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여기서부터 최대한 서두르고 수풀을 헤쳐나가고 뛴 결과 정말 아슬아슬하게 열차와 동시에 도착해 탈 수 있었다. 진짜 죽을 뻔... 대충 역 한 개 거리니까 꽤 여유롭겠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타네사시 해안에서 트레일을 걸어 무츠시라하마에서 열차를 타기 위해선 시간을 넉넉히 잡고 오는 게 좋을 듯.
그렇게 다시 도착한 사메역. 이제는 카부시마 신사를 방문했다. 섬인 척하는 언덕 위에 지어진 신사로 평소에는 갈매기가 말도 안 되게 많아서 입구에 우산을 구비해둔다고 한다. 이 날은 갈매기가 거의 없어서 새똥을 맞지 않을 수 있었다. 솔직히 갈매기가 난리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상당히 아쉬울 따름이다.
신사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쇼와산리쿠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4.1m), 그리고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5.3m)의 도달점이 각각 표시되어 있다. 여기 정도면 꽤 먼 편인데 여기까지 5m 급 쓰나미가 도달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신사 자체는 별게 없긴 하다. 신사가 있는 풍경이 이쁜 거지 신사는 그냥 평범한 느낌. 물론 신사에서 바라본 바다는 여전히 좋긴 하다. 심심해서 오미쿠지도 뽑아봤는데 소길도 아니고 미길(?)이 나왔다.
신사를 둘러보고 나오니 굉장히 애매하게 시간이 남아서 어떻게든 이리저리 해안가도 둘러보고 이상한 현지 음료도 마시면서 시간을 때웠다. 그렇게 다시 하치노헤선을 타고 혼하치노헤역으로 이동.
분명 혼하치노헤역은 나름 하치노헤시의 중심역일 텐데 수상할 정도로 주변 상권이 망해있다. 알고 보니 중심가는 역에서 좀 떨어져 있다고 해 거기로 갔는데, 진짜 도호쿠 특인지 정말 작고 번화하지 않은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심지어 들어간 노래방에서도 회원제라고 빠꾸 먹어서 상당히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주변에 있던 커다란 이자카야에서 시간이나 때웠다. 쿠시야키 향토요리 사카나야 긴스이 (串焼き・郷土料理 魚や吟翠, 타베로그 3.10) 라는 곳이었다. 사실 사시미를 먹으러 왔는데 어이가 없게도 모든 사시미가 다 나갔다 해서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그냥 적당히 시키면서 있었는데, 후이궈러우라던가 오징어라던가. 하이볼 자체는 199엔~299엔 정도로 저렴해서 나쁘진 않았다.
이제 홋카이도로 향하기 위해 페리 터미널로. 혼하치노헤역에서 페리 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페리 시각에 맞춰 있기 때문에 가는 건 어렵지 않다. 타게 된 페리는 매일 밤 22:00에 출발해 다음날 06:00에 홋카이도 토마코마이에 도착하는 실버 에이트호이다. 침대가 두 개 있는 좁은 2등 침대 A 객실의 경우 원래 학생 기준 7500엔인데, 일본 내의 학교에 다니는 경우만 학생 할인이 적용된다고 카운터에서 처음 통보받았다. 때문에 그냥 인터넷 예약 할인만 적용되어서 8100엔에 타게 되었다. 인터넷 예약조차 안 했으면 답이 없을 뻔했다.
객실의 모습. 상상 이상으로 굉장히 작다. 일단 저 빈 공간에 두 명이 겨우 서 있을 정도이다. 그래도 침대 자체는 충분히 넓어서 자기 편했다... 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이건 상당히 훈련소 보정이 큰 듯. 누웠더니 진짜 훈련소 모습이랑 놀라울 정도로 비슷해서 어이가 없었다. 23연대 1소대 2분대 19번 훈련병.. 특이점이라면 누우면 배의 흔들림이 느껴져서 뭔가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것 같다는 점. 심하진 않아서 취침하는 데에 문제는 없었다.
페리 내부에는 출항 한 시간 전부터 한시간 후까지 사용할 수 있는 대욕탕도 있는데, 바깥을 보면서 느긋하게 있을 수 있어 좋았다. 들어갈 때는 사람이 많았지만 금세 빠진 것도 행운인 부분일지도? 그리고 앉아서 뭔갈 먹거나 술을 마실 수 있는 좌석도 꽤나 있어서 맥주 한 캔 마시면서 누군가 틀어놓은 애니나 봤다. 전체적으로 페리가 생각보다 엄청 크긴 하다.
다만 중국인인지 문 열어놓고 10명 가까이 모여서 술판 벌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참 대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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