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0일
아침은 호텔에서. 아주아주 평범한 호텔 조식이었다. 후쿠시마 명물 뭐시기가 나오지 않으려나 했는데 어림도 없는.
나왔는데 폭우 경보가 뜨고 엄청난 비가 왔다. 여행 내내 통틀어서 비라고 할 만한 비가 이때만 오긴 했는데, 진짜 많이 오긴 했다. 아마 이때가 태풍과 전선에 의한 비구름대를 추월하는 때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후로는 특정 지역을 떠나면 그다음 날에 폭우 경보가 떴기 때문. 아무튼 비를 뚫고 이와키역에서 09:24 하라노마치행 조반선 열차를 탔다.
후타바역 도착! 꼭 와보고 싶었던 후타바마치.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고,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5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유령 마을이 된 곳이다. 그러다 보니 역에 내리는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 상당히 묘했다. 그러는 주제에 역은 또 쓸데없이 크다는 게 어이가 없을 따름. 일본 정부에서 '부흥'의 거점으로 삼는 게 후타바이다 보니 정치적 입김이 상당히 들어갔을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사고 이후로 이만큼 극복했다는 걸 선전해야 하니까. 물론 역을 이요하는 사람도, 마을에 사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역사 내에는 방사선 계수기가 있다. 0.084μSv/h라는 아주 정상적인 수치가 나오고 있다. 역과 역 주변은 거의 완벽히 제염을 했을테니 당연한 일. 다만 방사선이 문제가 아니라 역 내부에 청솔 귀뚜라미가 비정상적으로 많았다. 과장하지 않고 족히 100마리는 있었을 것. 발에도 치이고 벽에도, 천장에도, 유리에도 있었다. 말도 안 되게 많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후타바 산업 교류 센터까지 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열차가 지연되는 바람에 버스를 놓쳤다. 비도 오고 걸어가긴 애매해서 좀 많이 기다린 뒤에야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었다. 버스는 100엔, 물론 IC 카드 안 됨.
센터에서 자전거를 빌리고 나미에 초등학교로 향했다. 가는 길에서 아주 쉽게 귀환곤란구역 관련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역 주변은 특정부흥거점구역이라고 해 귀환곤란구역이 해제되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지만, 그 외는 절대 아니다. 말이 부흥이고 복귀지, 코앞에 결국 출입 금지 구역인 곳이 있는 것이다. 귀환곤란구역 내부에는 수많이 핫스팟(방사선이 매우 높게 관측되는 지점)들이 있을 것이다. 애초에 역 주변에서도 가끔 발견된다고 하니까.
코리야마와 우케도 경계의 강가에 흙 더미들이 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게 공사에 사용된 흙인지 아니면 혹시 제염토인지 단순히 지나갈 뿐인 나 입장에서는 하나도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이 옆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
길 이곳저곳이 아직도 공사 중이어서 꽤나 조심히 이리저리 돌아가다 보니 15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가서야 초등학교의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와 바람을 뚫고 달려서 엄청 힘들었다. 근데 무슨 공사를 하는지 애매한 게, 공원을 만든다고 쓰여있는데 아무것도 없고 뭘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보여주기식 행정인지 뭔지.
후타바마치 옆 나미에마치에 위치한 진재유구 나미에 정립 우케도 초등학교 (震災遺構 浪江町立請戸小学校) 에 도착. 과거 쓰나미에 직격 당한 나미에쵸의 초등학교로, 1층은 초토화되었지만 뼈대와 2층은 살아있어 아직도 동일본 대지진을 기억하고 전승하기 위해 남아있는 곳이다. 300엔을 내고 내부를 자유롭게 견학할 수 있다.
시작부터 정말 처참하게 파괴된 교실을 볼 수 있다. 서랍에 들어있던 것이나 구석에 있던 것들을 제외하면, 교실 안에 멀쩡한 것이라고는 거의 없을 정도.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있다.
이에 반해 구석에 남아 쓰나미를 피한 일부 물품들은 먼지가 끼어있지만 재해 전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이런 걸 챙기거나 정리할 겨를도 없이 지진과 쓰나미가 몰아닥친 것이다. 자신의 목숨도 건지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
쓰나미의 위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 저 커다란 기계가 뽑히고 저 자리에 내팽겨쳐진 것이다. 바닥의 잔해가 어지럽다. 다들 동일본 "대지진"이라고 하니 지진이 메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아니다. 물론 M9.1, 진도 7의 대지진이었던 건 맞지만 쓰나미가 대부분의 피해를 가져왔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파도의 모습과는 달리 해수면 자체가 높아진 상태로 덮치는 거라 피하지 못하면 사실상 죽는다고 봐야 한다.
이렇다 보니 일본도 '동일본 대지진'이 아니라 '동일본 대진재'라고 부른다. 지진과 이로 인해 야기된 재해(쓰나미, 지진화재 등)을 기억하자는 측면이다. 또한 지진 이후로 일본의 쓰나미 경보를 전하는 아나운서들의 어조와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것은 유명하다.
확실히 외관은 멀쩡하긴 하다. 내부가 초토화되어서 문제지. 그 와중 쓰나미 도달 높이라고 표시해 놓은 게 있는데 말도 안 되게 높다. 건물 1.5~2층 정도 높이는 족하다.
별관(?)에는 쇼와 61년에 만들어진 마을의 지도와 함께 아이들이 그린 것 같은 그림들이 붙어있다. 당시 초등학생들은 대부분 생존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현재 나와 동갑 정도일 것이다. 생각보다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멀쩡한 2층 교실에는 대진재 이후 현장을 수습하러 온 소방관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칠판에 남긴 문구가 남아있다.
마을의 미니어처. 전부 쓸려가고 없어졌다.
이렇게 마을과 폐허가 된 초등학교를 둘러보니 참 무서운 사건이었고, 이로 인한 피해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도 복구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느꼈다. 정치적 결정으로 인해 후타바마치 등 일부 마을을 중심으로 귀환곤란구역이 해제되었고 특정거점부흥구역이 지정되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와 부흥! 하고 바로 마을이 부흥하고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재해로부터 이제 13년이라는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지만 주요 건물들의 외관만 멀쩡하고 대부분은 여전하며 사람은 없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다.
시간이 되어 다시 13:12 조반선 하라노마치행 열차를 탔다. 이번엔 타는 사람이 나 말고도 좀 있었다.
하라노마치역에 내려 센다이행으로 환승했다. 그리고 낡은 701계가 왔다. 앞서 편하고 좋은 E531계를 탔기에 꽤 비교되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달려 도착한 토모의 고향 센다이. 확실히 대도시의 느낌이 났다. 사람도 많고 번쩍번쩍하다. 하지만 센다이만의 특징은 도시가 꽤나 입체적이라는 점이다. 역 앞이 복잡한 고가로 이루어져있어 차와 보행자가 얽힐 일이 다른 곳에 비해 적다. (물론 지상도 사람이 많긴 하다) 아무튼 확실히 이런 구조가 여러모로 편한 것 같다. 우리나라도 이런 도시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역 옆의 AER 전망 테라스에 올라가봤다. 작긴 하지만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나름대로의 전망대다. 날씨가 흐려 이쁘진 않았지만, 바로 밑으로 신칸센 선로가 있어 아키타 신칸센과 도호쿠 신칸센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망대에 틱톡 영상을 촬영하는 여고생들이 꽤 있었다. 이걸 보니 확실히 대도시라고 느낀..
멜론북스 센다이점을 가봤는데, 아무리 봐도 아키바점보다 큰 것 같다. 규모도 규모인데, 책장 사이 간격이 큼직큼직해서 구경하기 너무 편하고 좋았다. 그리고 블루아카에 진심인지 아비도스 3장을 재현해 놓은 열차 트랙도 있고, 직접 만든 게임개발부 모형이라던가 데스모모이 선풍기(?)도 있었다. 토키 생일 때 만들어놓은 것도 남아있었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크고 밝고 쾌적해서 아키바 멜론북스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던 곳이다.
센다이 하면 규탕. 그리고 그중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탄야 젠지로를 방문했다. 구체적으로는 탄야 젠지로 별관 (たんや善治郎 別館, 타베로그 3.52). 별관인데도 웨이팅이 꽤 있어서, 30분 이상은 앞에서 기다렸다. 중간에 젠지로 계열인 다른 식당으로 이동해서도 먹을 수 있다고 유인(?)당하기도 했는데 어차피 기다린 거 여기서 먹자는 생각에 계속 기다렸다.
그렇게 겨우 들어와 규탕 4매짜리 정식을 주문했다. 먹기 전에는 별 생각 없었는데, 한번 입에 넣고 씹으니 정말 신세계였다. 고기가 아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삭하면서 쫄깃하고, 그러면서도 질기지 않게 부드러운 상당히 묘하면서 마음에 드는 식감이었다. 진짜 너무 맛있었다. 같이 나온 정식 구성품들도 참 맛있었지만 규탕이 너무 압도적이라 규탕 생각밖에 안 난다. 아무튼 식감부터 맛까지 잡스러운 게 하나도 없이 새롭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괜히 센다이가 규탕으로 유명한 게 아닌 것. 다음에 규탕만을 먹으러 센다이를 들릴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센다이의 또 다른 먹거리는 즌다. 즌다몬으로밖에 몰랐는데, 나름 유명하다고 하는 즌다 사료 (ずんだ茶寮 仙台駅ずんだ小径店, 타베로그 3.43) 에서 즌다 쉐이크를 한번 사 먹어 보니 꽤나 중독성 있는 맛이었다. 분명 먹을 땐 조금 고소한 밀크 쉐이크일 뿐 별로 특별한 건 없었는데 이후에 계속 생각나서 모리오카에서도 한번 더 사 먹었다. 마약을 탄 것도 아니고 참 신기하다.
그 와중 역 앞에 있는 예비교는 다름 아닌 걸밴크의 니나가 다녔던 예비교(駿台予備学校 仙台校). 참 혼자 뜬금없는 곳에 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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