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렌체에서의 두 번째 날은 마침 8월의 첫 번째 일요일이었기에 대부분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날이었다. 덕분에 상당히 비싼 곳들을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갈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물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사람도 엄청 많기는 했지만. 그렇게 일단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하고 큰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부터 갔다. 약 30분 정도 기다린 끝에 입장할 수 있었다.



입장 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복도에 놓인 조각들이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조각들은 솔직히 다 비슷하게 생기기는 했으나 나름대로 역동성을 찾아볼 수 있는 구도나 자세가 있고, 또한 남성과 여성 조각을 통틀어 인간의 조형미를 꽤나 잘 묘사한 작품이 많아 보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러 개 보다 보면 그게 그거인 것 같기는 하다.

미술관 내에는 또 줄을 서야 볼 수 있는 방이 있는데, 트리부나(Tribuna de los Uffizi)라는 곳이다. 메디치 가문 소유의 가장 귀중한 작품들을 이 방에 모아놓았다고 하는데, 대표적으로 메디치 비너스와 요한 조파니의 그림 등이 있다. 전자는 유명한 조각상의 복제품이고, 후자는 이 방 자체에 대한 그림이다. 다만 다른 조각 및 미술작품과 마찬가지로 조명 배치가 아쉬워 편하게 감상하기 어려웠다.

복도에서 뻗어 나온 방들에는 그림들이 걸려있는데, 대부분 기독교 계열 그림(성화)라 재밌진 않다. 이에 대해 누군가가 굉장히 잘 써놓은 글이 있다. 종교 자체에 대한 색을 생각하면 확실히 맞는 말 같고,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기독교 그림은 그 주제와 회화 스타일이 그림들끼리 매우 유사한 편이 많아(애초에 시대적으로 양식이 같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면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무튼 그렇게 좀 가다 보면 보티첼리의 작품을 모아놓은 방이 있고, 여기에 이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그림인 비너스의 탄생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빛을 부드럽게 잘 썼다는 점 외에는 다른 그림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좋게 말하면 보티첼리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디헤이즈를 먹어야 할 것 같은 그런 색감인데, 싫어하지는 않는다.

박물관을 둘러본 뒤 근처의 Osteria Vecchio Vicolo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기선 봉골레를 시켜봤는데 꽤나 맛있었다. 조개에서 나온 감칠맛이 잘 살려져 있고, 특히 소스의 질감이 살짝 굵은 면과 잘 어울렸다. 직원도 매우 친절해서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다만 역시 가격이 조금만 저렴했으면 좋았을 듯. 오스테리아에서 파스타 하나에 20유로 이상은 좀 쉽지 않다.


밥을 먹고 다시 두오모를 지났다.

그렇게 향한 곳은 아카데미아 미술관(Galleria dell'Accademia). 이곳에는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있다. 사실 이렇게 큰 줄 몰랐는데, 입구를 지나자 돔 밑에 서 있는 엄청나게 큰 조각을 보고 놀랐다. 조각 주위를 360도로 둘러볼 수 있도록 길이 나있는데, 앞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돌팔매를 볼 수 있었다. 확실히 이렇게 돌팔매를 감춰둔 것을 보니 일반적인 다윗에 대한 묘사와는 다른 듯.



다비드상도 굉장했지만 이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는 Gipsoteca라고 하는 수많은 조각이 모여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이 미술관은 원래 미술학교 학생들을 위한 교육 목적으로 설립되었기에 교육 자료에 해당하는 석고 모형이 굉장히 많고, 그걸 한 공간에 모아놓으니 박력이 장난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Luigi Pampaloni의 Orfanella라는 작품이 인상 깊었는데, 절제된 자세와 조형에도 불구하고 감정이 상당히 잘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찾아보니 바위 위에 다른 조각과 함께 Orfani sulla rupe라는 이름으로 전시된 작품의 일부라고 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미술 작품과 조각이 있는데,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Ratto delle Sabine)라는 작품이 미술관의 중앙에 크게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대리석 하나로 세명을 조각한 상당한 작품인데, 딱히 구분되는 앞/뒤가 없어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나름대로 새로운 관점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여기에 전시된 것은 원본 석고 모형이라고 한다.

미술관에서 나오니 너무 더워서 숙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산 미니아토 알 몬테 대성당(Abbazia di San Miniato al Monte)쪽으로 가보았다. 근처에 있는 미켈란젤로 광장보다 높은 지대에 위치하여 피렌체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장소인데, 햇빛이 비치니 두오모를 중심으로 펼쳐진 중세풍의 도시가 참 아름다웠다. 성당 자체는 현재 보수공사 중이라 제대로 보기는 어렵고, 전망대 느낌으로 방문하면 좋을 듯. 엄청 유명한 장소까지는 아니라 사람이 얼마 없는 게 좋았다.

성당에서 걸어 내려와 주변을 둘러보며 걸었다. 그렇게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를 지나게 되었는데, 이게 일단 다리긴 한데 양옆에 상점들이 쭉 늘어서있는 신기한 구조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일하게 폭파되지 않은 다리라고 하는데, 히틀러가 나름대로 이쁘다고 생각해서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다. 솔직히 아름답다기보다는 신기한 느낌이 앞서는 듯.


저녁은 미리 예약해 둔 Acqua Al 2에서 먹었다. 이곳은 블루베리 스테이크와 발사믹 스테이크와 같은 특이한 스테이크가 유명한 곳인데, 나는 발사믹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발사믹이 스테이크와 상당히 잘 어울려서 물리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으나, 좀 많이 달다고 느껴졌다. 절반 정도로 덜 달고 발사믹 향이 좀 더 많이 느껴졌다면 최고였을 듯. 스테이크의 굽기도 상당히 이상적으로 나왔다. 다만 소스가 끼얹어진 비주얼이 상당히 별로라는 게 문제. 그냥 사진을 찍으면 뭔 타버린 스테이크 같다.

역시 하루의 끝은 젤라또로 마무리. 이번에는 유명한 Venchi Cioccolato e Gelato에서 먹어봤는데 실망시키지 않는 맛이었다. 하루에 젤라또 하나는 먹어야 이탈리아에 왔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맛, 질감, 신선도 전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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