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전날 로프웨이 때문에 가지 못했던 운젠 지옥을 가보았다. 사실상 노보리베츠와 차이가 없는 곳인데, 큰 암석들이 더 많은 계곡 느낌이라 분위기는 좀 더 지옥 같긴 하다. 거기다가 천주교 신자들이 고문받아 순교한 곳이기도 해 실제로 어떻게 보면 지옥 같은 곳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운젠 지옥은 나름대로 걷기 편하게 길이 잘 나있고, 길을 따라 다양한 구역들로 나뉘어있다. 주요 분출구가 계속 이동 중이어서 이런 구역들이 계속 만들어질 수 있는 것.
노보리베츠가 가볍게 증기를 내뿜는 거대한 곳이었다면, 이곳은 작아도 굉장히 강력하게 증기를 내뿜고 곳곳에서 격렬하게 온천수가 끓고 있다. 그에 걸맞게 유황 냄새도 엄청나다.
근데 의외로 동물도 많다. 냄새에 민감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유황 냄새를 싫어하지 않게끔 진화한 것인지는 모른다.
나름대로 화산이랍시고 진흙이 분출되는 구멍도 있는데, 놀라울 정도로 느리게 나와서 격렬하게 분출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가끔씩 중앙의 구멍에서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정도.
버스 도착 시각까지 시간이 좀 남았기에 근처의 오시도리노이케(鴛鴦ノ池)에 슬쩍 가보았는데, 인공 호수답지 않게 주변 경관이 꽤 아름다운 편이었다. 규모도 크고 주변의 산과도 잘 어울리는 청색 빛깔이 돋보였다. 다만 역시나 흐린 날씨 때문에 오히려 을씨년스럽게 보였다는 점은 흠. 보니까 온천수가 이곳으로도 흘러드는데, 두 물의 색이 확실히 다른 게 재밌다.
그렇게 버스(850엔)를 타고 산을 넘어 시마바라역에 도착. 바로 역에 짐을 맡기고 같이 딸려있는 관광안내소에서 1100엔으로 전기자전거를 대여했다. 좀 비싼 편이긴 하지만 시마바라 인근의 관광지들이 좀 퍼져있는 편이라 빌리는게 좋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치치부가우라 공원(秩父ヶ浦公園). 운젠 지오 스팟 지도에 나름 지오스팟이라고 적혀있어서 가보았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이 휑하고 길만 작게 나 있는 정도다. 보통 낚시하는 사람들이 자주 방문하는 듯. 대충 공원 입구에 작은 저수지 같은 공간이 있고, 제방을 따라 길이 있고 길 끝까지 가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느낌이다. 여기서 1792년 시마바라 대변(島原大変) 때 만들어진 여러 섬들인 츠쿠모지마(九十九島)를 볼 수 있다.
이쁜 새도 찾아와서 개인적으로 수묵화 같아서 맘에 드는 사진도 건졌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토석류 피해 가옥 보존 공원(土石流被災家屋保存公園)이다. 이곳은 1992년 후겐다케의 분화와 관련한 토석류가 발생했을 당시 토석류에 파묻힌 집들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물론 일부 가옥은 다른 곳에서 이곳으로 이전한 경우도 있으나, 아무튼 토석류의 위험성을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토석류란 물이 섞인 산사태라고 보면 되는데, 그만큼의 질량이 아주 빠른 속도로 덮쳐오기에 매우 위험하다. 다행히도 해당 집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당시 이미 피난하여 희생자는 없다고 한다.
어쩌다 보니 공원 옆에 위치한 휴게소인 히마와리(道の駅ひまわり, 타베로그 3.19)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추천이라고 쓰여있길래 히라마사동(부시리 덮밥)을 주문해 봤는데, 역시 난 카이센동류는 그다지 입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왜 회를 따뜻한 밥 위에 올려 먹는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아무튼 그래서 회 따로 밥 따로 먹었는데 훨씬 나았다. 전체적으로 평범.
보통 화산쇄설류라고 하면 용암과 화산재 등등이 섞여서 흐르는 고온/고속의 흐름을 의미하는데, 운젠산의 경우 용암 돔이 붕괴하면서 크고 작은 화쇄류가 종종 발생했으며, 특히 1991년 6월의 화쇄류로 인해 43명이나 사망하기도 했다.
화쇄류 최장 도달점을 지나 오르막길을 계속 오르다 보면 나오는 구 오오노키바 초등학교 피해 교사(旧大野木場小学校被災校舎)는 같은 해 9월의 화쇄류에 의한 피해를 입은 곳으로, 정확히는 화쇄류에 동반되는 열풍으로 인해 싹 다 타버려 폐교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초등학교 옆에 위치한 오오노키바 사방 미라이관(大野木場砂防みらい館)은 정식 명칭 '오오노키바 감시소'로, 말 그대로 화산활동을 감시하는 일종의 초소이다. 이곳 근처 미즈나시강 상류에는 화쇄류와 토석류를 막고 가두기 위해 짓는 사방(沙防)의 공사 현장이 있는데, 장소가 장소인만큼 현장의 안전이 우려되어 감시소가 지어졌다고 한다.
미라이관 안에는 전시실이 있기는 있는데 규모도 작지만 애초에 관리가 잘 되고 있지 않으며, 경비원이 건물 내부에서 멋대로 담배를 피우고 있어 냄새도 난다. 위에는 나름대로 전망대가 있어서 헤이세이 신잔을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역시 관리 부실로 앞의 패널은 작동하고 있지 않고 방치된 모습이었다.
근처의 화쇄류 최장 도달점(火砕流最長到達点)를 경유했다. 말 그대로 화산쇄설류가 가장 멀리까지 내려온 지점이다. 이곳에서 헤이세이 신잔까지 약 5km 정도 떨어져 있다는 걸 생각하면 참 멀리도 왔다.
미즈나시강 하류의 와렌 강(われん川)은 시마바라 주민들의 약수터로, 과거 시마바라 대변 때 생겨났다가 1991년부터의 각종 재해를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고 해서 이곳 부흥의 상징이라고 한다. 보면 물이 정말 맑고 깨끗하긴 하며, 옆에는 작은 사당이 있다.
하류까지 계속 내려오면 미즈나시 도류제(水無川導流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요건 위의 사방에서 1차적으로 막은 물질이 넘어왔을 때 바다까지 흐름(流)을 안전하게 유도(導)하기 위해 건설한 일련의 제방(堤)이다. 하늘에서 보면 흐름을 계속 중앙으로 모아주도록 각도를 주어 설계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보통 다른 도시에 있는 강보다 훨씬 넓으면서도 물이 없다. 사실 옆으로 흐르고 있는 미즈나시 강 자체가 이름처럼 비가 올 때만 강이 되는 강이긴 하다.
다시 시내로 올라오다 보면 하마노카와 용수(浜の川湧水)가 있다. 시마바라 대변 당시 처음 용출된 물로, 현재까지 인근 주민들의 생활용수로 활용되고 있는 곳이다. 용도(식품, 세탁 등등)에 따라 4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있어 적어도 다른 용수들보다는 비교적 위생적(?)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바로 옆에는 이 하마노카와 용수를 사용해 지역 명물인 칸자라시를 선보이는 긴스이(銀水, 타베로그 3.55)가 있다. 1915년(다이쇼 4년)에 처음 생긴 가게로 아직까지 계속 이어오고 있는 지역을 대표하는 곳이다. 대충 쫄깃한 동그란 떡과 차가운 꿀을 같이 먹는 디저트라고 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 엄청나게 달진 않아서 쉽게 먹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시원했다. 그리고 떡이 의외로 굉장히 쫄깃해서 식감이 좋았다.
자전거 반납시간인 16:00가 되어 반납 후 레이큐코엔타이이쿠칸역 옆에 있는 호텔로 향했다. 걸어갈까도 생각해 봤는데 마침 열차 시간이 딱 맞아서 시마테츠를 타기로 했다. 딱 전형적인 시골 디젤 전동차 느낌이었다. 확실히 큐슈 느낌.
다시 시마바라로 돌아와 잉어가 헤엄치는 거리(鯉の泳ぐまち)를 지나갔다. 거리 옆에 작은 수로가 있는데, 여기에 잉어가 엄청 많이 산다. 나름대로 잘 꾸며놓았기도 하고, 수로 외에 길가에 있는 가옥 내부 연못에도 잉어가 많아서 테마를 참 잘 잡았다 싶었다.
시마바라 시내를 쭉 걸었는데, 정말 사람이 놀라울 정도로 없었다. 이 정도로 사람이 적은 마을은 처음 봤다.
시마바라 성에도 잠깐 가봤다. 성은 별 관심이 없기에 그냥 슬쩍 보기만 했다.
나름대로 성에서 보는 풍경도 좋았다. 작은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저녁은 호쥬(ほうじゅう, 타베로그 3.29)에서. 간바스시(がんばすし)가 특이하다고 하여 간바스시 정식을 먹었는데, 직육면체로 되어있는 밥 위에 복어(がんば)가 있고 밥 안에 시소가 들어있는 형태의 스시다. 복어의 식감도 부드러워서 괜찮긴 했는데, 시소가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려 전체적인 밸런스가 참 좋다고 느꼈다. 같이 시마바라의 향토요리인 구조니(具雑煮)도 나왔는데, 떡, 닭고기, 채소, 버섯 등을 넣고 끓인 국물요리로 묘하게 우리나라 떡국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담백하니 먹기 쉬운, 호불호가 없을법한 요리였다.
사실 밥 먹고 이자카야를 가려고 했는데 역시 상권이 망한 건지 전부 닫아버려서, 그냥 주변을 좀 걷다가 돌아갔다.
11월 17일
할게 마땅치 않은 날. 애초에 여행 자체가 운젠, 시마바라, 나가사키시의 경로로 가려고 했으나 17일에 사세보에서 불꽃놀이가 있어 나가사키시의 숙박비가 미쳐 날뛰는 바람에 이렇게 바꾼 것이다. 사실 원래 경로로 갔으면 운젠에서의 날씨도 완벽했을 법하고 마지막 날에도 나가사키 시내에서 뭔갈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아무튼 뭘 할지 생각하다가, 운젠산 재해 기념관 가마다스 돔(雲仙岳災害記念館 がまだすドーム)에 가보았다. 입장료는 1050엔 정도로 꽤 비싼데, 내부에는 화산과 화쇄류, 토석류 등에 대한 전시화 체험 기구들이 나름대로 알차게 있으나 그래도 비싼건 변하지 않는다. 3층에는 전망대가 있어 맑은 날이면 헤이세이 신잔이 아주 잘 보일 것 같기는 하나 일기예보와는 달리 흐려서 잘 안보였다.
그래서 다 좋은데, 여기서 찍은 사진이 전부 날라가서 그냥 그러려니..
다 보고 공항으로 가기 위해 시마바라역에서 열차 탑승. 이사하야역에서 오무라선으로 환승 후 신오무라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루트이다. 근데 맞은편 승강장에 Cafe Train이라는 처음보는 열차가 들어왔다. 안을 슬쩍 보니 실제로 카페처럼 운영되고 있는 듯. 나름대로 시마테츠의 관광열차인 것 같다.
마지막 점심은 이사하야역에 위치한 야마카츠쇼쿠도(山勝食堂, 타베로그 3.38)에서. 야키니쿠 정식을 시켰는데 살짝 짰지만 감칠맛이 엄청나서 밥도둑이었다. 나가사키 짬뽕보다 훨씬 맛있는 듯.
그리고 귀국. 근데 나가사키 공항 정말 작다. 국제선 출발이 오직 문 하나로만 되어있고 플랫폼도 한개뿐이다. 살면서 본 출국장 중에 가장 작은 출국장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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