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슬슬 일본 쿨타임이 차서 안 가본 나가사키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예전에 운젠산의 화쇄류 영상을 보고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좋은 기회가 되었다. 아침 8시에 출발하는 KE797편인데 역시 아침 비행기가 여행하기에 참 좋다.
근데 새벽의 인천 2터미널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엄청 많았다. 그래도 사전 모바일 체크인 -> 셀프 백드랍 -> 스마트패스의 사전준비(?) 루트를 타니 순식간에 끝나서 별 의미는 없었다. 스마트패스 줄에는 사람이 2명 정도뿐이었는데 일반 줄에는 거의 100명은 있었던 것 같다.
맛있는 아침 기내식이 나왔다. 짜긴 짜지만 오징어의 식감이 아주 좋았다.
가는 길에 나가사키의 산들과 함께 높은 운젠산(헤이세이 신잔)을 봤다.
나가사키 입성! 확실히 작은 공항이었다. 지금까지 갔던 공항중에 가장 작았던 듯? 원래는 내가 가본 공항 중 오카야마 공항이 가장 작았었는데 이제 나가사키 공항이 가장 작게 되었다. 그런 공항답게 세관에서 Visit Japan 관련 시스템이 고장 나서 수기로 갑자기 작성하게 하질 않나, 세관에서 잡혀서 꼬치꼬치 여행에 대해 심문당했다. 그래도 잘 빠져나온..
공항에서 나가사키 시내까지는 사실 좀 거리가 있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1500엔은 좀 비싼 것 같다. 액세스 특급이 1200엔 정도인걸 생각하면 확실히. 아무튼 그렇게 버스로 나가사키 시내로 갔다.
나가사키에서의 첫끼는 메가네바시역 근처에 있는 쿄라쿠엔(共楽園, 타베로그 3.73)에서. 나름 타베로그 짬뽕 부문 평점 1위점이다. 800엔대의 가격에 비해 꽤 푸짐한 짬뽕 한 그릇이 나온다. 닭과 조개, 채소 베이스의 느끼한 국물에 양배추와 숙주가 잔뜩 들어가 있는 모습이었다. 확실히 한국에서의 나가사키 짬뽕 컵라면을 생각하고 먹으면 안 되고, 딱 일본스럽게 하나도 맵지 않은 면 요리일 뿐이다. 일본에서 먹어본 모든 음식들 중 가장 짰던 것 같고, 딱히 특별한 부분은 없던 듯. 나가사키에 왔다면 먹어볼 만은 하나 좀 쉽게 물리는 맛이라 또 먹진 않을 것 같다.
근처에는 메가네바시(眼鏡橋)라는 다리가 있는데, 아치교가 물에 비쳐서 안경처럼 보인다고 붙은 이름이라 한다. 사람들이 꽤 많이 몰려있는 것에 비하면 이게 다임.
그래도 하천이 나름 깨끗한지 물고기도 있었다.
전차를 타고 평화공원역으로. 1량뿐인 것, 엄청 흔들리는 것 등등 여러모로 확실히 지하철보다 낭만이 있다. 특히 저 레버(?)가 드르륵거리면서 이동하는게 꽤 재밌다.
평화공원은 나가사키 원폭투하 이후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공원 입구에는 분수가 있는데, 원폭투하 당시 시민들이 물을 원하며 죽어갔다고 하여 이를 기리기 위해 설치되었다고 한다. 공원 맨 끝에는 꽤 거대한 평화기념상이 있는데, 195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왼손은 평화를, 오른손은 원자폭탄을 의미한다고 한다.
공원을 잘 꾸며놓은 것도 그런거긴 한데, 초등학생이 정말 많았다. 방문객의 3/4는 초등학생인 듯. 확실히 원폭은 국가적으로 여러모로 큰 의미가 있긴 있는 듯하다. 원폭 맞은 건 일본 군부 측의 전적인 업보이며, 원폭이 전쟁을 끝내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결과론적으로 더 큰 희생을 막았다. 그러나 그로 인해 희생된 건 일반 시민이 다수라는 점에서 민간인 학살이라고도 볼 수 있다(물론 일본군이 학살한 민간인도 매우 많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참 묘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냥 전쟁을 안 하는 게 답이기 때문인지, 반전(反戰)의 상징으로써 나가사키와 히로시마가 아직도 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당시 나가사키 형무소에 딸린 우라카미 형무지소의 터도 공원 내부에 있는데, 이게 말이 형무소지 '불순분자'인 중국인과 조선인들을 마구 가두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근데 밑에 보면 평화공원 내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가 있다고 나와있는데, 후술 하겠지만 아무리 봐도 이 추도비는 평화공원 밖에 있다.
평화공원 앞에는 이곳이 원폭 폭심지임을 알리는 검은 돌기둥이 있다. 그런 곳 답게 여러 동심원으로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공원 내부에는 작은 하천이 있어 확실히 수공간에 의미를 두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폭심지 근처 참 뜬금없는 위치에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가 있는데, 이게 참 평화 공원 내부에 있는 것도 아니고 화장실 앞이기도 해서 여러모로 좀 그렇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원폭자료관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바로 옆에 위치해서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관람객들은 무조건 보고 갈 것이라는 점 정도. 추모비 앞에 아이시스가 놓여 있는 게 흥미로웠다. 확실히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꽤 되는 듯하다.
원폭 자료관 옥상에서는 원폭폭심지 근처 시가지를 둘러볼 수 있는 작은 전망대가 있는데, 확실히 앞에 놓인 당시의 사진과 비교하면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복구가 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1950년대에 도시의 기능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고 하니, 확실히 피해에 비해 꽤 빠른 복구라고 할 수 있을 듯. 여러모로 대단하긴 하다.
자료관 옆에는 원폭 사망자 추도 평화 기념관이 있다. 앞선 평화공원이나 원폭 자료관의 경우 그냥 그렇구나 라는 느낌이었는데, 이곳은 건축학적으로 추모의 공간임을 굉장히 잘 느낄 수 있게 조성한 느낌이 들어 굉장히 인상 깊었다. 기념관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원형으로 조성된 수변공간을 돌아야 하는데, 평화공원의 분수와 같이 희생자들이 물을 갈구했다는 점과 깊이 연관된 곳이다. 이 공간은 아주 깔끔하게 각이 지지 않도록, 또는 물이 요란하게 떨어지지 않도록 매끄럽게 되어있어 아름다웠다.
이 공간의 지하에는 또 다른 공간이 있는데, 그곳까지 가는 길의 층고가 매우 높고 간접조명이 절제되어 배치되어서 추모 공간이라는 성격을 잘 살린 것 같다. 이후 마주하는 큰 공간이 바로 본격적인 추모 공간으로, 지상의 수변 공간에 있는 기다란 유리 기둥으로부터 이어지는 5쌍의 기둥과 함께 그 끝에 희생자들의 이름이 담긴 기둥이 있다. 수직적으로 공간배치를 정말 잘해놓은 것 같다.
재밌는 사실은, 상부 유리 기둥에서 반사된 빛이 굴절해서 추모공간 바닥에 무지갯빛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칙칙한 돌과 단색의 유리로 구성된 높은 수직 공간 상부에서 들어오는 햇빛, 그리고 이 빛이 바닥에 만들어내는 무지개는 추모와 평화라는 두 가지 성격을 아주 잘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건축학 전공은 아니라 딱 여기까지가 좀 생각해 본 결과고, 아무튼 정말 잘 조성한 공간 같다.
대충 마이고 극장판 후편의 상영시간 시간이 되어 나가사키역으로. 나가사키에서 마이고 극장판을 상영하는 유일한 극장이 역 앞 백화점에 있다. 나름대로 굿즈도 좀 남아 있어 포스터를 포함 몇 가지를 좀 사고, 특전도 받았다. 나가사키에서 봤다고 나가사키 소요가 나온 건지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시초반을 극장에서 빵빵한 음량과 대화면으로 보니 참 좋았다. 근데 그거보다 뒤에 붙은 필름라이브가 상당한 것이, 라나가 진짜 너무 멋있고 이쁘게 나와서 라나 특전 못 받은 게 한이다. 그나저나 노로시는 언제 해주지..
버스를 타고 이나사야마로. 나가사키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가면 뭔 세계 3대 야경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간 건데 로프웨이가 높이치고 좀 비싸다. 아무튼 어찌어찌 수많은 관광객에 낑겨서 힘겹게 타고 올라갔는데, 전망대가 있는 건물에 어디서 많이 본 우산이 걸려있어서 놀랐다.
이나사야마 전망대에 올라와서 보니 확실히 야경이 이쁘긴 이쁘다. 스타디움 시티와 나가사키역을 메인으로 옆에 바다가 있고, 작은 집들도 듬성듬성 있어서 확실히 좋은 야경이다. 다만 세계 3대라고 하면 그건 잘 모르겠다. 아무튼 야경은 괜찮긴 한데 로프웨이가 비싸기도 하고 사람도 많아서, 그냥 버스 타고 이나사야마 공원에서 내려서 걸어 올라오던가 슬로프카를 타도 좋을 것 같다.
저녁은 모모와카(桃若, 타베로그 3.63)에서. 대충 오뎅이 메인인 이자카야다. 무, 유부주머니, 두부, 한펜 등등 원래 좋아했던 것들을 왕창 시켜서 쇼츄 미즈와리와 함께 먹었고, 맛이나 분위는 딱 평범한 이자카야 느낌. 꽤 비싸다고 해 각오했는데, 대충 6~7 종류에 레몬사와 한잔, 쇼츄 미즈와리 한잔까지 3100엔 정도여서 나쁘지 않았다.
근데 어쩌다가 미야자키와 나고야 등등에서 온 다른 손님들과 엮여서 개소리를 좀 하게 되었다. 진짜 별 쓸데없는 이야기를 다 한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대충 친해져서 같이 2차를 갔다. 여기서 좀 골 때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일행 중 한 명이 술집 추천받겠다고 길가는 할아버지한테 물어봤다가 그 할아버지도 같이 마시러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지간한 한남력을 자랑하시는 분이라 온갖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어찌저찌 일단 할아버지부터 내보냈으나 분위기가 묘해져 얼마 지나지 않아 나가게 되었다.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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