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나름대로 일찍 출발했다. 이 날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와슈잔(鷲羽山). 세토 내해와 세토 대교를 조망할 수 있는, 그다지 높지는 않은 산이다. 독수리(鷲)가 날개(羽)를 펼친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여 와슈라는데 잘 모르겠다. 오카야마역에서 마린라이너를 타고 코지마역에서 내린 후 시모덴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버스 시간표는 여기에서.
코지마역에 진입하는 마린라이너. 앞이랑 뒤 둘 다 저런 모양이 아니고 한쪽만 그런 게 좀 웃기다. 솔직히 멋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나름 인상이 강렬하긴 하다. 근데 드립이 아니고 진짜 해병 느낌이 있다.
처음 버스를 타고 내린후 5분 정도 올라가면 나오는 제2전망대. 아주 무난한 풍경이다. 시야 양 끝을 가로질러 세토 대교가 넓게 펼쳐진다. 대교 전체를 쭉 볼 수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뷰. 뻥 뚫린 느낌이라 기분이 좋아진다. 이 뷰를 보면 세토 내해가 괜히 국립공원으로 지정된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와슈잔이 세토 내해의 국립공원 지정에 어느정도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제2전망대에서 15분 정도 올라가면 산 정상이 나온다. 여기서 보는 뷰는 뭐 높기는 한데 앞선 전망대와 크게 다르진 않다. 다만 133m짜리 산이라기보단 좀 더 높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정상에서 세토 대교 쪽으로 내려가면 위와 같은 꽤 이쁜 모습이 나온다. 세토 대교 첫 구간이 적절한 각도로 보이는 게 아주 맘에 든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풍경. 매력이 있다.
길의 끝까지 10분 정도 더 걸으면 아즈마야 전망대(東屋展望台)가 있다. 세토 대교 교량 첫 부분 바로 위에 있는 곳으로, 다리 자체가 엄청 큰 만큼 경치도 상당히 멋지다. 전망대엔 정자 하나만 딱 있고 사람은 진짜 없는데, 여기 앉아서 산바람 맞으며 쉬는 게 그렇게 기분 좋았다. 개인적으로 여기서 도시락을 먹는다면 참 좋을 것 같다.
세토 내해의 경치를 구경했다면 이제 배를 채울 시간. 우동현이라 자칭하는 카가와현의 기상을 맛보아야 한다. 일단 경로 상 요산선 역 부근에 있는 우동집들을 방문하기로 계획했다. 다른 우동집들도 많지만 전부 방문하려면 뚜벅이 입장 상 좀 빡세기도 하고, 어차피 도쿠시마도 가야 하니 연선 상에 있는 곳들을 방문하는 게 좋을 거라 판단했다.
그렇게 다시 코지마역에서 마린라이너를 타고 사카이데역에서 요산선 완행으로 환승한 후 내린 곳은 카모가와역. 원래 여기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타베로그 4점짜리(!) 가모오(がもう)라는 곳에 가려고 했으나... 문을 닫았다. 아니 왜 이걸 미리 안 찾아본 거지? 진짜 어이가 없다. 게다가 열차 배차 간격도 1시간이어서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진짜 문 닫은걸 알았을 때 엄청 절망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근처에 있는 코다와리멘야 사카이데 카모가와점(こだわり麺や 坂出鴨川店, 타베로그 3.22)에 갔다. 셀프 우동임을 강조하는 간판이 보였고, 실제로 내부에서 우동 종류와 토핑 등을 직접 선택하는 구조였다. 이때 아주 덥고 지친 상태라 카레우동 전문점인데도 불구하고 아지타마 냉우동을 시켰다.
근데 진짜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분명 구글 평점도 별로고 타베로그도 별론데 거의 인생 우동 급으로 맛있었다. 이렇게 환상적으로 탄력 있는 면발과 가쓰오부시의 감칠맛이 과하지 않게 폭발하는 완벽한 국물은 처음이었다. 분명 엄청 지쳐있어서 맛있게 느껴졌겠지만, 아무튼 상상 그 이상이어서 먹으면서 너무 행복했다.
다만 여긴 카가와현 여러 군데에 있는 체인점이라, 굳이 여길 가겠다고 카모가와에 올 건 아니고 가모오 가려고 왔다가 좀 더 먹고 싶은 사람들만 슬쩍 들릴만한 곳인 것 같다. 왜 영업일 체크를 안 했지...
남은 시간엔 역 주변이나 슬슬 둘러봤다. 진짜 여기가 내가 가본 곳들 중 '시골'이라는 이름에 가장 적합한 것 같다. 이게 그냥 논밭뿐인 농촌 마을이면 오히려 덜 했을 것 같은데, 나름 집도 좀 있으면서도 폐가(?) 같은 곳도 있고 하천 주변엔 아무것도 없고 무엇보다 사람도 없어서 상당히 시골이라는 느낌이 뿜뿜했다. 특히 저 호텔 시마3의 폐건물이 가장 기괴했는데, 분위기가 상당했다. 호텔의 디자인부터 색, 내부의 다 쓰레기까지 가관이었다. 찾아보니 카가와에 다른 시마 호텔이 있는데, 그곳들과 달리 요긴 폐업한 지 좀 된 것 같다.
그 와중 카모가와역에서 본 R18 열차. 마침 색도 빨강. 그나저나 카모가와역이 좀 웃긴 게, 승하차시 ic 카드 태그하는 곳이 서로 아예 다른 곳에 있다. 역 입구에 승차 시 찍는 리더기가 있고, 역 플랫폼 한가운데에 하차 시 찍는 리더기가 있다. 난 당연히 역 출입구에 리더기가 있을 줄 알고 출구까지 갔다가, 막상 입장 게이트만 있어서 엄청 헤매었다.
다음은 가모오 우동처럼 타베로그 4점에 가까운 하리야(はりや)에 가려고 했으나, 체감온도가 거의 30도에 육박하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었기 때문에 역에서 17분은 걸어야 하는 여긴 가볍게 포기. 어쩌다 보니 원래 가고 싶었던 곳 두 곳은 모두 못 가게 되었다.
그렇게 가게 된 곳은 타카마츠역 근처의 수타우동 후게츠(手打うどん 風月, 타베로그 3.73). 나름 타베로그 상위권이기도 하여 살짝 기대하며 기본적인 카케우동을 시켰는데, 이게 의외로 별로였다. 면발은 앞선 우동처럼 괜찮았는데, 국물이 그냥 그랬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묘하게 밸런스가 완벽하지 않은 느낌? 여긴 애초에 카케우동보다는 닭 튀김으로 추정되는 무언가와 함께 나오는 종류의 우동에 집중하는 곳이라 그랬을지도. 차라리 아까처럼 냉우동이나 시킬걸 그랬다. 그래도 적당한 느낌이라 맛있게는 먹고 나왔다.
타카마츠도 관광지가 많은 곳은 아닌 만큼, 살짝 시간이 뜬 김에 역 주변에 위치한 타카마츠성이나 구경하려고 했지만 너무 더워서 그냥 기차 출발 시간 20분 전부터 역에 가 있었다. 그래도 역까지 가는 길에 성의 입구는 봤고, 코토덴도 구경했다. 아무튼 시간이 되어 소용돌이를 보기 위해 특급 우즈시오를 탔다. 일단 이름부터 소용돌이라 벌써부터 심상치 않다. 타카마츠에서 이케노타니까지 우즈시오를 타고, 거기서 버스 타고 50분 정도 가는 느낌. 그리고 여기서부터 ic 카드가 사실상 안된다고 보면 된다. 특히 도쿠시마에 들어가면 아예 못 쓴다.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이케노타니역에 내렸다. 여긴 나루토선과 코토쿠선이 분기하는 역인 만큼 꽤나 경치가 볼 만하다. 역에 있는 고가 위에 서서 멀어져 가는 우즈시오를 멍하니 봤다. 역시나 시골.
버스 정류장은 역 근처에 있는데, 여기도 경치가 볼만하다. 열차 선로랑 대충 눈높이가 비슷하게 맞춰져서 재밌다. 바로 옆을 지나가면 바퀴에서 튀긴 돌에 혹여 맞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아무튼 버스가 한 4분 정도 지연된 후 왔고 겨우 탔다. 이케노타니역에서 소용돌이가 있는 나루토 해협으로 향하는 버스의 시간표는 여기 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바로 그 유명한 나루토 소용돌이를 볼 수 있는 나루토 해협. 소용돌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 좀 더 작고 빠른 우즈시오 기선(うずしお汽船)을 타러 왔다. 카메우라구치(亀浦口) 정류장 바로 앞에 있어서 접근성도 좋다. 가격은 1600엔 정도이고, 30분 간격으로 출항한다. 다만 소용돌이가 강한 시각은 매일 다르기에 여기서 미리 조사하고 가는 것을 추천. 난 겨우 마지막 타임인 4시 반에 도착하여 탔다. 만일 우즈시오 기선이 아니라 좀 더 느리고 큰 우즈시오 관광기선(うずしお観潮船)을 타고 싶다면 나루토관광항(鳴門観光港)에서 내리면 된다.
배를 타고 나가면 오오나루토교와 나루토 해협의 경치가 펼쳐진다. 이따끔 다른 배들도 보이는데, 특히 효고현 쪽에서 출발한 우즈시오 크루즈는 범선 같이 생겨서 존재감이 있다. 약간 오오나루토교와 디자인적으로 묘하게 매칭이 안되는 느낌이라 재밌다.
해협 쪽 물살이 거친 곳으로 이동하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이게 진짜 신기한 게, 해수면 위의 모든 점에서 물의 움직임이 각각 다르다. 일반적인 강이나 바다처럼 물이 일관적으로 이동하는 곳이 하나도 없다. 모든 곳에서 움직임이 다 제멋대로라 어떤 곳에서는 용승하기도 하고 침강하기도 한다. 그게 다 섞여가지고 아주 이런 난리가 따로 없다. 개인적으로 소용돌이 자체보다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움직이는 물 자체가 더 신기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크고 작은 소용돌이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 그 부분에서 해수면 높이가 확 낮아지는 걸 체감할 수 있고 저기 빠졌다가는 확실히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런 현상이 나타나는 원리는 꽤나 간단한데, 나루토 해협의 중앙부는 깊고 가장자리는 얕기에 조석에 의해 바닷물이 세토내해로 유입되거나 빠져나갈 때 중앙부의 유속이 주변부의 유속보다 상대적으로 매우 빠르게 나타나며, 따라서 유속차가 크게 나타나는 부분에 저 말도 안 되는 물살과 소용돌이가 만들어지게 된다.
배의 속도가 꽤나 빨라 소용돌이 속을 엄청 빠르게 질주하는데 나름 스릴이 있다. 중간에 자세히 보라고 멈춰 주기도 하고, 빨리 달릴 땐 물도 좀 튀기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덧 대충 20분 정도가 소요되고 끝난다. 사실 20분 1600엔이면 확실히 비싸긴 한데, 그만큼 저 소용돌이가 인상적이긴 했다. 이후 시간 맞춰서 바로 버스를 타고 약 1시간 정도 걸려 도쿠시마 시내로 이동했다. 버스 시간표는 여기.
저녁은 도쿠시마의 향토 요리를 먹고 싶기도 했고, 굳이 호텔에서 많이 걷고 싶지도 않았기에 켄도챠야(けんど茶屋, 타베로그 3.35)로 정했다. 뭔가 일본 관광객들이 도쿠시마 와서 어디서 밥 먹지 하다가 가는 곳 느낌. 그래서 도쿠시마 요리라지만 사실 도쿄에서 역수입 됐다는 도쿠시마 돈부리를 시켰는데, 상상 이상으로 너무 맛있었다. 저 고기랑 계란이 너무 잘 어울려서 5분 만에 싹 비웠다. 식감 좋고 맛있는 양념이 밴 고기와 노른자의 고소함과 걸쭉함이 밥과 잘 어우러졌다. 같이 나온 스다치가 들어간 국도 마찬가지. 살짝 시큼하면서 짭짤해서 밥도둑이었다. 또 스다치 주스도 나왔는데, 마침 아주 더웠기에 매우 만족. 전체적으로 사람도 별로 없고 평도 엄청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난 너무 만족했다.
그리고 시작된 바 투어(?). 사람들은 도쿠시마시가 관광지가 1도 없고 현청소재지임에도 정령지정도시도, 중핵시도 아닌 깡촌이라고 말하지만 (그리고 실제로 그렇지만), 그나마 뭔갈 꼽자면 바로 유명하다. 누군가는 바의 도시라고 할 정도. 도쿠시마에서 유명한 게 영귤(すだち)이라 라임이 들어간 칵테일을 꽤나 주력으로 하는 듯했다. 다만 지금은 제철이 아니라 그냥 라임을 쓰는 듯? 아무튼 놓칠 수 없어서 끌리는 곳에 가 보았다.
도쿠시마의 바는 거리 하나에 싹 다 몰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긴자 축소판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게, 모든 건물의 대부분의 층이 전부 바다. 아무튼 처음으로 간 바는 바 토요카와(バートヨカワ). 40년 전부터 계속 영업하고 있는 바로, 도쿠시마에서 가장 오래된 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 마스터의 아들이 현재 운영하고 있다. 전날 오카야마에서 추천 받은 곳이다.
여러 가지를 시켰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칵테일은 버번 마미 테일러. 스카치를 버번으로 대체한 것이다. 버번이 꽤 많다고 하길래 '버번이 들어간 리프레싱한 롱드링크'를 달라 했는데, 실제로 그에 아주 딱 맞는 한 잔. 포 로지스 버번을 썼는데 아주 마시기 편했다. 이외에 처음으로 유키구니(설국)을 먹어봤는데, 그냥 그랬다. 역시 칵테일은 맛도 맛이지만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듯.
아무튼 전체적으로 칵테일 얘기도 하고 도쿠시마가 깡촌이니 볼 게 없느니 하면서 바텐더가 이야기를 나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 전날 바 마에다에서 추천받은 쿠루쿠루 나루토가 거품이라고 깠던 것.
다음은 바 아르셰(バーアルシェ). 2009년 산토리 칵테일 어워드 등등에서 우승한 분이 바텐더를 하고 있다. 처음엔 단골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엄청 시끄럽긴 했는데, 중간에 가서 아주 조용해졌다.
여기서도 몇 잔 마셨는데, 마스터 오리지널이자 바의 이름이기도 한 아르셰(Arche)가 기억에 남는다. 칼바도스, 자몽 리큐르, 그리고 시럽 두 종류(정확히 뭔지 확실히 기억이 안남)가 들어가는데 아주 마시기 쉽고 달달했다. 또 아와 진이라는 진을 마셨는데 상상 이상의 시트러스함(특히 유자)가 강해서 좋았다. 이 정도로 시트러스 일변도의 진은 처음. 덕분에 꼭 구하고 싶은 진 2위가 되었다. 1위는 마이린겐 진.
이 바는 제자(?)로 추정되는 바텐더가 엄청 친절했다. 덕분에 재밌게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바텐더 애니가 방영 중인데, 그거 보고 와서 허세 부리는 사람이 진짜 있느냐라는 얘기라거나, 일본어 발음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아무튼 전체적으로 도쿠시마에 대한 인식이 잡혔는데, 사실 여행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분명 도시긴 하지만 다른 현청 소재지들과 비교하면 나사가 몇 개나 빠져있다. 그래도 의외로 볼 게 있는 도시. 관광과 마케팅, 그리고 교통만 어떻게 하면 될 것 같은데.. 진짜 차 없으면 돌아다니는 게 너무 힘들다. 버스도 얼마 없고 그것도 엄청 돌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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