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
케네디 우주센터와 함께 이번 여행에서 크게 기대했던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날이다. 평소 큰 폭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어 이런 폭포가 몇 개 있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꼭 가보고 싶었다. 이곳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가기가 쉽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투어를 신청했다. 어쩌다 보니 투어 인원이 나와 내 친구뿐이라 쾌적한 투어가 되었다.
호텔에서 요세미티까지는 3~4시간이 족히 걸린다. 좀 자다가 일어나보니 어느새 밖에는 굉장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렇게 가장 처음 도착한 장소는 요세미티 계곡 뷰 포인트(Yosemite valley view point)였다. 이곳은 요세미티의 상징 하프 돔(Half Dome)이 계곡 정중앙으로 보이는 장소로, 공원 입구에 위치해 사실상 공원의 입구 취급을 받는다. 거대 절벽인 엘 케피탄(El Capitan)도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맛보기에 불과하다.
대망의 터널 뷰(Tunnel View)이다. 말 그대로 터널을 빠져나오면 보이는 풍경이 정말 엄청나다. U자곡을 중심으로 양쪽에 엘 케피탄과 면사포 폭포가 보이는데, 내가 살면서 본 자연경관 중 가장 엄청난 것 같다. (그래봤자 별로 본 것도 없지만, 굳이 2위를 뽑으라면 설악산 토왕성 폭포 정도가 있을 것 같다.) 내가 사진을 찍은 저 돌 난간에 걸터앉으면 엄청 무서우면서도 아름다운 경관 때문에 할 말이 없어진다. 그렇게 몇 분간 계속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계곡, 그 아래의 숲, 옆의 화강암 지대, 그리고 폭포까지 모든 구성 요소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계곡 아랫부분으로 내려왔다. 그 중 가장 먼저 간 곳은 면사포 폭포(Bridalveil Falls)로 위의 터널 뷰에서 잘 보이던 폭포이다. 아쉽게도 수량이 충분하지 않아 그냥저냥 한 물줄기만이 보였지만, 그래도 높이가 꽤나 높은 수직낙하 폭포라 웅장했다. 주변의 절벽이 완벽한 수직을 이루고 있고, 그 사이로 떨어지는 한 줄의 물은 그야말로 '폭포의 기본' 같아 보인다. 다만 후술 할 요세미티 폭포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다.
그 다음은 스윙 브릿지(Swinging Bridge)이다. 이곳에는 요세미티 중앙을 흐르는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고 옆에 큰 공터가 있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상부 요세미티 폭포(Upper Yosemite Falls)이다. 다리에서는 맑은 강물과 폭포를 볼 수 있고, 공터에서는 절벽과 폭포가 파노라마 뷰처럼 넓게 펼쳐진다. 예전부터 베네수엘라의 앙헬 폭포를 보는 것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요세미티 폭포가 앙헬폭포와 꽤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지 더 감동적이었다. 사실 봄 말에 수량이 가장 많다고 하는데, 갔을 때도 수량이 그럭저럭 되었고, 무엇보다 물이 떨어지는 낙하호 쪽에 눈이 쌓여 예뻤다.
그리고 미러레이크(Mirror Lake)로 이동하였다. 이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트레일을 따라 좀 걸어야 한다. 그렇게 걸어서 도착한 곳에는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숫물이 매우 맑고 고요해서 수면 위의 물체들이 잘 비쳐 보인다. 잠깐 바람이 불 때나 오리가 지나갈 때를 빼면 정말 거울 같다. 묘하게 저 호숫물을 마시고 싶어졌다.
그 후 공원 내부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카레의 맛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기괴했다. 그냥 생략하겠다.
마지막은 하부 요세미티 폭포(Lower Yosemite Falls)이다. 이곳은 미러레이크보다는 짧은 트레일을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데, 이 트레일에서 보이는 폭포의 전경이 매우 빼어나다. 상부와 하부가 같이 보여 엄청 웅장하다. 그렇게 트레일 끝에 도착하면 하부 폭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데, 수량이 꽤 되어 물이 튀긴다. 하부 폭포의 높이는 약 98m 정도인데, 이 정도 크기의 폭포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다. 시원한 물소리가 마음을 치유해주는 느낌이었다. 여행의 마지막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이렇게 요세미티 투어를 마치고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중간에 잠에서 깼는데, 옆의 친구가 창밖을 보라고 해 봤더니 엄청나게 많은 별이 보였다. 그래서 차를 멈추고 별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리온자리 오른쪽으로 겨울철 은하수가 보였는데, 여름철 은하수도 못 본 입장에서 더 어두운 겨울철 은하수를 보는 느낌은 꽤나 묘했다. 지금까지 딱히 어두운 관측지에 가본적이 없어, 수많은 별들에 매우 감동받았다. 휴대폰으로 30초 노출을 했는데 위 사진처럼 찍혔다. 얇은 구름층이 있었고 옆에서는 차들이 밝은 전조등을 켜고 지나가는데, 만일 이런 게 없었다면 뚜렷한 은하수를 볼 수 있을 뻔했다.
이렇게 별을 보고 다시 호텔로 오니 여러모로 지쳤다.
2월 1일
귀국하는 날이다. 무언가를 특별히 하기에는 뭔가 애매해, 깃허브의 본사에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경전철을 탔는데, 굉장히 깔끔하고 신기했다. 내부는 우리나라 경전철보다 깔끔한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신기했던 건 버스처럼 하차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차벨을 누르던 말던 무조건 정차하는 것 같긴 했다. 어쨌건 다른 도시의 교통수단보다 놀라울 정도로 깔끔해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깃허브의 본사는 SoMa 지역에 위치해있다. 이곳은 실리콘밸리처럼 IT 회사들이 잔뜩 모여있는 곳인데,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서 들어본 회사들의 본사가 꽤 있다. 사실 깃허브 본사의 내부는 들어갈 수 없었고, 밖에서 슬쩍 구경하는 정도였다. 본사 건물은 옥토캣 아이콘 말고는 깃허브 건물이라는 걸 알 방법이 없었고, 안쪽에는 거대 옥토캣 조형물이 보였다.
사실 이곳보다 SoMa 지역 자체가 좋았던 것이, 길이 미국의 다른 지역과 달리 굉장히 깔끔하고 넓었다. 특히 월 가와는 아예 대척점에 있는 곳 같다. 우리나라로 비교하면 마곡지구와 꽤 비슷한 느낌이다. 걷다보면 정말 미국에 있는 느낌이 하나도 안 든다.
점심으로는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첫날에 먹었던 똠양꿍을 다시 먹었다. 역시 변함없이 맛있다. 여기에 더해 차(茶) 같은 것을 같이 시켰는데, 이 역시 굉장히 맛있었다. 다음에 반드시 다시 방문하고 싶은 식당 1순위다.
근처에서 코로나 검사지를 인쇄한 뒤, 재팬 타운에 방문했다. 이곳의 Uji Time Dessert에서 말차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는데, 딱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전형적인 말차 아이스크림 맛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미국 느낌이 하나도 나지 않는 애니 굿즈 샵이 있는데, 생각보다 굿즈 종류가 다양해서 놀랐다. 일본어 원서 분량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느낌이다. 심지어 원신 중국 원서(?)도 있었다. 여기서 시간을 좀 때웠는데, 확실히 할 게 없는 사람들은 이곳에 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저녁은 무한리필 고깃집 YakiniQ에 갔다. 사실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에 한식을 먹는게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워낙 한국 음식이 그리웠기 때문에 매우 맛있게 먹었다. 물론 고기의 질은 한국에서의 고기와 비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맛있었다. 같이 시킨 매운 주꾸미가 이번 미국 여행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매웠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두 시간 가량 기다린 후, 귀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아시아나 211편이었는데 사람이 거의 안 타고 있어 빈자리에서 가로로 누워서 갈 수 있었다. 덕분에 준비해온 영화를 거의 보지 않고 잠을 푹 잤던 것 같다. 계속 잠결이어서 기내식으로 뭐가 나왔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 사실 내가 저 게이트를 통과한 시각이 키움 히어로즈의 야시엘 푸이그 선수가 게이트를 통과하고 10분쯤 뒤였는데, 못 봐서 아쉽긴 하다. 어쨌든 입국하면 엄격한(이라고 쓰고 속만 터지는) 방역 절차에 돌입한다. 동선을 철저히 통제한다고 하는 것 같은데, 방역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도 꽤 되고 그 버스로 보건소에 데려다준 뒤도 매우 어수선했다. 입국하자마자 이 난리라 좀 짜증 났지만, 많은 해외 입국자가 있고 또 그중에서 감염자도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이렇게 14일간의 미국 여행이 끝났다.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한 여행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로나 시국에 여행을 무사히 갔다 온 것 자체가 뿌듯하다. 이렇게 푸짐한 여행을 이 시국에 갔다온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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